절규 Sakebi, 2006 영화 일기 - 외국 영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야쿠코 쇼지, 코니시 미나미 주연, 오다기리 죠, 히라야마 히로유키 출연
 
"아주 오래전 당신은 나를 봤어요. 그리고 난 당신을 봤어요. 그리고 모두가 나를 버렸어요"

1.
'곡성'을 보고 나서 구로사와 기요시가 떠올랐다. 그래서 찾아본 영화. 기묘한 스릴러를 호러로 풀었다는 공통점. 다만 '곡성'이 굉장히 많은 욕심을 부린 작품이라면, '절규'는 딱 하고 싶은 말만, 보여주고 싶은 장면만 간결하게 보여준 느낌. 야구로 치자면 홈런 타자의 풀스윙과 교타자의 짧고 정교한 스윙의 차이랄까.

2. 
반복되는 지진 장면들은 언제라도 삶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만 같다. 우리는 그것을 잊고 살지만 원자폭탄과 지진을 경험한 일본인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3. 
독특한 분위기가 굉장히 음산한 영화. 로케이션과 미술이 인상적. 다만 10년전 작품임을 감안해도 몰입을 방해하는 수준의 CG는 아쉬움.

(2016.05)


깊은 계곡 응달의 당신 - 이영광


깊은 계곡 응달의 당신

주말 등산객들을 피해 공비처럼 없는 길로 나아가다가
삼부능선 경사면에 표고마냥 돋은 움막 앞에서
썩어가는 그것을 만났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그것도
놀라지 않았다 몸이 있어 있을 수 있는 광경이기에
이미 짐승들이 뜯고 찢어 너덜너덜한 그것 곁에 찌그러진 양푼 곁에
불 꺼진 스탠드처럼 어둑어둑 소나무 그늘이 드리웠기에
나는 쭈그려 담배를 피우며 아, 여기는 저승같네 하면서도
정시하진 못했다 아직 시체와 눈 맞는 인간이 되어선
안되었다 그것이 자기를 잊고 벌떡 일어나선 안 되었다
사실 파리는 왱왱 거리고 구더기들은 들끓었다 구더기들은 
다시 파리가 되어 피를 빨고 알을 슬어 헐렁한 음부나
가슴 밑에 또 구더기를 키우고 있을 터였다. 그러면 저것은 
죽은 것인가? 그렇다고 대답했는데 그것이 고개를 약간 
갸웃했다 나는 이해했다, 저 몸은 이 산의 압도적인 응달 안에서
개울물과 함께, 독경 같은 새소리와 함께 뒤척이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검은 흙과 푸른 잎에 숨 쉬듯 젖고 있지 않은가
금방도 꺾였던 무릎을 슬며시 폈다, 이것은 산 것인가?
나는 답하지 못했다 고개가 또 혼자 갸우뚱했다
생이 한 번 죽음이 한 번 담겼다 떠난 빈 그릇으로서 
이것의 야윈 몸은 지금 축축하고 혈색도 체취도 극악하지만
죽은 그는 다만 꿋꿋이 죽어가고 있다 무언가가 아직
건드리고 있다, 검정파리와 구더기와 송장벌레와 더불어
깊은 계곡 응달의 당신은 잠투정을 하는 것 같다 귀가 떨어졌다
당신의 뺨은 문드러졌다 내장이 흘러나왔다 놀랍게도
당신의 한쪽 팔은 저만치 묵은 낙엽 위를 혼자 기어가고 있다
그것이 닿는 곳까지가 몸일 것이다 끊겼다 이어지는 
새 울음과 근육질의 바람이 이룩하는 응달까지가 당신의
사후일 것이다 고통과 인연과 불멸의 혼을 폐기하고 순결히
몸은 몸만으로 꿈들된다 제가 몸임을 기억하기 위해 부릅뜨고
구멍이 되어가는 두 눈을, 눈물의 벌레들을 곁눈질로
보았다 그것은 끝내 벌떡 일어나지 않았지만 
죽음 뒤에도 요동하는 요람이 있다 생은 생을 끝까지 만져준다
나는 북받치는 인간으로 돌아와 왈칵 왈칵 토했다 아카시아
숲길 하나가 뿌옇게 터져 있다 자연이 유령의 손으로 염하는
자연을 또 한 번 본다 이 봄은 울음 잦고 길할 것이다



곡성 THE WAILING, 2016 영화 일기 - 한국 영화


나홍진 감독, 곽도원, 황정민, 쿠니무라 준, 김도윤, 천우희, 김환희 주연, 장소연, 허진, 손강국, 최귀화 출연

1.
의심할 바 없는 걸작

2
하나의 장르로 규정지을 수 없다. 오컬트 무비에 가장 가깝겠지만 스릴러로도, 드라마로도 하나의 경지에 올라있다.

3. 
두번 봤다. 기를 몽땅 빨리고 온 첫번째 보다 확실히 여유있게 볼 수 있었다. 그래도 두 번 정도는 소름이 돋더라.

4.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이 가는 캐릭터는 부제인 양이삼(김도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양이삼이 혼자 일본인(쿠니무라 준)의 동굴을 찾아간 마지막 장면. 가장 즐거웠던 장면은 병규(곽도원)가 정육점 사장(최귀화)을 비롯한 친구들을 용달차에 태우고 일본인의 집을 찾아갔다가 박춘배와 혈투를 벌이는 좀비 시퀀스. 

5. 
당초 쿠니무라 준의 역할에 기타노 다케시가 얘기 됐었던 모양. 그래도 좋았겠지만 결과물을 봐선 쿠니무라 준 외의 다른 배우는 상상할 수 없다. 

6. 
장면 장면이 디테일에 공들인 티가 팍팍 나더라. 배우들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아주 작은 소품 하나하나까지. 게다가 촬영은 믿고 보는 홍경표 감독.  

7. 
처음 볼때는 강아지풀과, 두번째 볼때는 사까이와 함께 갔다. 앤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스마트폰을 꺼내 사까이의 얼굴에 대고 사진을 찍었다. 찰칵, 소리가 나자 비로소 내가 무얼 하는지 눈치챈 사까이와 서로 배꼽을 잡고 한참을 웃었다. 

(20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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