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탈리콜 Total Recall, 2012 영화 일기 - 외국 영화


랜 와이즈먼 감독, 콜린 파렐, 케이트 베킨세일, 제시카 비엘 주연

"로리, 뭐하는 거야?"
"내 임무.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일개 공돌이가 특공대를 제압했겠어?"
"어떻게 된거야? 말해"
"난 네 아내가 아냐."
"헛소리마. 결혼한 지 7년이 지났잖아"
"난 연방요원이야. 아내 역할을 한 거지. 네 기억은 완전히 다른 삶으로 대체됐어. 더그 퀘이드라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봐 나같은 여자가 왜 너랑 결혼해서 이런 시궁창에서 살겠어?"
"그럼 난 누구야?"
"나야 모르지. 지시만 따른 거니까. 코하겐 수상이 널 저항군한테서 숨길 정도면, 쌈질 하는 걸 보니 정원사는 아니겠어"
"자긴 왜 날 죽이려해? 말해!"
"권태기라고 생각하든가"

21세기 말 생화학전으로 전세계 대부분이 황폐화되자 주거공간은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됐고, 지구상엔 UFB라 불리는 브리튼 연방관 식민지인 콜로니 2개 지역만 남았다. 콜로니의 노동자들은 매일 UFB로 가서 일했다. 더그 퀘이드(콜린 파렐)또한 콜로니의 노동자다. 그는 다른 노동자들과 달리 성실한 태도로 일하고 성과도 좋았다. 그러나 콜로니 출신이라는 꼬리표로 인해 회사에서 인사(人事)상의 불이익을 받는다. 매일 반복되는 일과에 지친 퀘이드는 출근길에 봤던 토탈리콜의 광고를 떠올린다. '꿈꿔온 환상을 경험하고 싶으세요? 리콜사가 완벽한 기억을 심어드립니다' 마침 새로온 직장동료의 추천으로 용기를 내어 리콜사를 찾는다. 더그 퀘이드가 선택한 환상은 이중첩자. 다만 환상은 실제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야 한다. "가끔 유부남이 찾아와서 애인과 밀월여행을 보내달라고 하는데, 실제로 애인이 있다면 현실과 환상이 충돌해 뇌가 손상되죠" 자신이 이중첩자일리 없는 더그 퀘이드는 안심하지만 테스트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다. 퀘이드의 정체가 스파이로 나온 것. 리콜사의 프로그램은 즉시 중단되지만 어느새 들이닥친 경찰에 직원들은 모두 죽어버린다. 퀘이드 만이 간신히 현장을 빠져 나와 집으로 간다. 그러나 아내 로리(케이트 베킨세일)는 돌변해 퀘이드를 죽이려 한다. 퀘이드는 영문을 모른채로 사방 팔방에서 쫓기는 신세가 된다. 이것은 현실일까 아니면 토탈리콜 프로그램의 일부일까. 

오리지날 버전의 '토탈리콜'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나는 이 영화의 결말에 당도하기 전까지 이게 전부 프로그램의 일부(가상현실)라 믿었다. 더그 퀘이드가 이중첩자를 선택했고, 테스트를 거의 마치는 순간 주사기의 약물은 이미 투입되고 있었으니까. 리콜사의 스태프 맥클레인(존 조)이 황급히 총을 겨누며 "넌 누구야?"라고 말할때, 그 말이 곧 "game start!"의 의미로 들린 것은 나뿐일까. 어쨌든 오리지날 버전의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덕분에, 나는 제법 흥미진진하게 이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어릴적 본 아놀드슈왈츠제네거 주연의 '토탈리콜'(1990)은 내겐 썩 재밌는 영화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단 화면이 어두웠고, 내용도 어린 내가 보기엔 다소 어려웠다. 기억에 남는 것은 아직 꼬마였던 나를 경악으로 몰아넣은 가슴이 세개 달린 여자뿐. 그래서 무려 22년만에 리메이크된 '토탈리콜'에서 가장 반가운 건 (여전히) 가슴이 세개 달린 여자였다. 만약 내게 1990년의 '토탈리콜'을 한 장의 스틸컷으로 남기라면 당연히 그녀가 등장한 장면을 고를텐데, 이럴수가 리메이크판으로 다시보니 그녀는 그냥 지나가는 엑스트라일 뿐이었다. (그리고 오리지날 버전과 달리 브래지어를 차고 나왔다. 관람등급을 맞추기 위해서였다나 뭐라나)

그러니까 사실상 나는 '토탈리콜'을 처음 본 것과 다름 없다. 이 영화에서 제일 먼저 눈이 간 것은 미래도시의 디자인이었다. 제법 디테일에 신경쓴 모습이었고, 황폐화 되었으나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는 도시의 풍경은 꽤 인상적이었다. 특히 동양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거리의 모습은 오리지날 버전에서 옮겨 온 것인지 아니면 새로 만들어 낸 건지 궁금했다. 공각기동대(1995)가 떠오르기도 하고, 민병천 감독의 '내추럴 시티'(2003)가 떠오르기도 했다. 특히 '내추럴 시티'는 상당히 비슷하지 않은가 싶은데, 만약 오리지날 버전 '토탈리콜'(1990)도 그렇다면 '내추럴 시티'가 그 영화에 많은 영향을 받은 셈이 된다. 그런데 누군가는 '내추럴 시티'가 '블레이드 러너'(1993)를 상당부분 참고한 작품이라 하던데 '블레이드 러너' 또한 하도 어릴때봐서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가상현실을 체험하게 하는 리콜사의 아이템은 역시 꿈 속에 잠입해 기억(가상현실)을 심는 '인셉션'(2010)을 떠올리게 한다. 비슷한 컨셉이지만 '인셉션'이 꿈과 현실을 복잡하게 오가며 '머리'를 쓰는 영화라면, '토탈리콜'은 가상현실과 혼재된 지워진 기억 사이에서 쫓고 쫓기며 '몸'을 쓰는 보다 육체적인 강도가 센 영화다. 그래서 중반 이후의 구조는 '본 시리즈'(2002~2007)를 닮았다.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차가우면서도 매력적인 '제이슨 본'(맷 데이먼)에 비해, 뭔가 좀 평범해보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약간 울상을 지으며 뜀박질 하는 더그 퀘이드(콜린 파렐)가 주인공이라는 것.   
 
그런 면에서 보면 '토탈리콜'의 커다란 재미는 오히려 더그 퀘이드의 두 여자, 로리(케이트 베킨세일)와 멜리나(제시카 비엘)가 보여주는 액션의 쾌감에서 나온다. 좁은 공간에서 둘이 맞붙는 '캣 파이트 신'(두 여배우의 대결)도 그렇고, 바닥이 무너지며 아래로 떨어질 때 여러차례 멋진 착지 자세를 보여주는 케이트 베킨세일의 액션들도 그렇다. 특히 케이트의 모습들은 자연스레 '언더월드'(2000~2012) 시리즈의 뱀파이어 전사 셀린느와 겹쳐지는 장면들이 꽤 있다. '진주만'(2001)의 청순한 간호사였던 케이트 베킨세일에게서 처음으로 여전사의 얼굴을 발견한 이가 바로 '토탈리콜'의 감독 랜 와이즈다. '언더월드'는 그의 감독 데뷔작이고 심지어 지금 랜 와이즈는 베킨세일의 남편이기도 하다. 그렇게 보면 진정한 낙하산 캐스팅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오리지날 버전의 샤론 스톤과는 또 다른 매력을 베킨세일이 이 영화를 통해 제법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낙하산 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SF 영화의 손꼽히는 걸작으로 남은 폴 베호벤 감독의 '토탈리콜'에 비해, 랜 와이즈의 '토탈리콜'은 그냥 한 편의 할리우스 블록버스터로 기억될 듯 하다. 그렇더라도 오리지날 버전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본다면 충분히 재밌는 구석이 많은 영화다. 오리지날 버전과 비교해가면 이 영화에 끊임없이 비판을 가하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 가혹해 보인다. 물론 그것이 리메이크 버전의 숙명이겠지만 말이다.      

- 원작은 필립 k 딕의 단편소설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We Can remember It for You Wholesale) 


(모든 영화는 연결되어 있다. 201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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