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지구 To Love With No Regret, 天若有情 1990 영화 일기 - 외국 영화


진목승 감독, 유덕화, 오천련 주연, 황광량, 오맹달 출연

"포숙, 내 차좀 팔아줘"
"왜? 아깝지 않아?"
"아까울 거 없어, 팔아서 중고차 가게 하면 돈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뭐? 사람답게 살려고? 세상살이가 내 마음대로 다 되는 줄 알아?"

'의리를 위해 피투성이가 된 이를 보라. 사랑하는 연인이여 청춘은 죽음이 두렵지 않네. 꿈꿔왔던 청춘은 바람에 날리고, 자신도 모르게 얼굴엔 슬픔만이 가득찼네. 자연의 변화가 새 생명을 만든다지만, 처량한 비는 날 고독하게 만드네'
- '천장지구' 주제가中

어릴적 부모를 잃은 아화. 거리의 세계에서 별다른 꿈과 희망없이 살고 있다. 어느날 의형제처럼 가까운 칠형이 라바(황광량)의 보석상 털이를 도와주라고 부탁한다. 아화는 평소 라바를 탐탁치 않게 여기지만 칠형의 부탁이라 응한다. 보석상 털이 당일. 상황은 예기치 않게 흘러간다. 순찰 중이던 경찰의 갑장스러운 등장. 아화는 경찰에 쫓기게 되고 어쩔수 없이 한 여학생을 인질로 잡아 위기를 탈출한다. 여학생의 이름은 쥬쥬(오천련). 보석상 털이에 성공한 라바 일행은 아화의 차에 탄 쥬쥬를 발견하고 죽이려 하지만 아화가 막는다. 아화는 쥬쥬를 무사히 집으로 데려다 준다. 쥬쥬는 그런 아화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은 곧 사랑이 된다. 한편 범죄 세계의 세력다툼은 계속되고 아화의 의형 또한 죽음을 맞는다. 아화는 복수를 결심한다.

뭐랄까. 이 영화는 '나쁜 오빠의 환타지'랄까. 청순한 모범생 여학생이 나쁜 오빠에게 납치된 후 오히려 그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는 이야기. 인질범을 사랑하는 스톡홀름 증후군과는 좀 다르다. 영화속 납치범과 인질의 관계는 금방 끝나니까. 그보다는 부유한 가정에서 결핍을 모르고 자란 여학생이 결핍 투성이의 나쁜 오빠를 만났을때, 가슴떨림과 모성애와 새로운 세계의 호기심이 어떻게 사랑의 환타지로 그녀를 옭아메는지, 그리고 어떻게 삶의 파국을 불러오는지를 보여준다. 

어릴적엔 이런 영화를 보면 두 주인공을 떼어놓으려는 부모님을 욕하면서 봤는데, 이제는 부모님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고 있구나. (ㅠㅠ) 두 사람을 말리는 부모가 이해가 되는 이 상황이 왜 이렇게 씁쓸하지? 30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내가 본 '나쁜 남자/나쁜 오빠'들은 정말 나쁘기만 했으니까. 우리네 현실에서 나쁜 남자 = 무능력한 남자가 아니던가. 회사생활을 하며 느낀 것 중의 또 하나. 일류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놀기도 더 잘놀더라. 어쩜 저리 재주도 많고. 어쩜 저리 화끈하던지. 일류도 삼류도 아닌 나는 또 어찌나 일하는 것도 노는 것도 어중간하던지. 그럴때는 참 세상이 얄궂게도 느껴졌는데..

물론 '천장지구' 속의 아화는 정말 멋지다. 홍콩 영화 속의 유덕화라는 인물은 주윤발, 장국영, 양조위, 금성무, 성룡, 이연걸 등이 가지지 못한 뭔가 다듬어지지 않은 청춘의 이미지가 있다. 청자켓과 오토바이.'이유없는 반항'의 제임스딘 같은 느낌이랄까. 장학우도 약간은 겹쳐지는 지점이 있긴 하지만 장학우는 유덕화 만큼의 매력이 없다. (아, 이 문장을 쓰고 나니 고교 시절 편지를 주고 받던 한 소녀가 떠오른다. 그녀가 장학우의 열혈 팬이었지) 그러고 보면 9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영화들 속 유덕화의 캐릭터는 뭔가 일관된 정서가 있다. 그 정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90년대의 홍콩영화를 정의하는 문장이 되리라.

'천장지구'는 걸작은 아니지만 마음을 쥐고 사정없이 흔드는 결말을 갖고 있다. 쇼윈도 유리창을 깨고 여인에게 웨딩드레스를 입히는 남자. 거리에서 무릅꿇고 기도하는 여자. 그리고 죽음을 예감하면 서도 연인을 남겨두고 복수를 하려 달려가는 남자. 사랑의 결실을 앞둔 순간에도 그에게는 역시 의리가 더 중요하다. 턱시도를 입은 채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유덕화의 모습은 그대로 90년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 '묘가십이소'에 이어 '천장지구'에도 코믹한 조연으로 출연하는 오맹달을 보니, 한국 영화의 감초배우 오달수가 생각난다. 오맹달은 이 영화로 제 10회 금마장 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다. 
- 박신양 전도연의 '약속' 결말 부분이 약간 '천장지구'를 참고한 듯 하다
- 오천련은 사실 다른 홍콩(대만) 여배우들에 비해 좋아하는 배우는 아니었는데. '천장지구'를 다시 보니 예쁘긴 정말 예뻤구나.  

(모든 영화는 연결되어 있다. 2015.07.17)



생각해보니 편지를 주고 받던 그 소녀가..
20대의 오천련을 닮았다. 정말 쏙 빼닮았다.


덧글

  • 봉봉이 2015/11/12 10:54 # 답글

    저도 참 홍콩영화를 좋아하는데
    특유의 정서가 정말 좋은거 같아요.....
    뭔가 뒷일을 생각하지 않는것들이 순수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대부분 느와르물이 그렇지만 참...양면이 있는거 같아요.
    범죄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한편으로 동정과 환상을 가지고 연민도 가지게 되고
    우리나라 조폭영화도 그렇고 비장미가 물씬 풍기기도 하잖아요.

    그런 느낌이 좋아서 일부러 찾아보곤해요.
    홍콩영화의 끝물이 저의 유년기여서 친구들과 그런감정을 나누기 힘들다는게
    좀 아쉽더군요.
  • 르노 2015/11/12 17:28 #

    네. 홍콩영화의 르네상스가 지금까지 계속 되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면에서 아직까지 활동중인 주윤발, 유덕화, 성룡에게 감사한 마음이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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