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지 않아 No Regret, 2006 영화 일기 - 한국 영화


이송희일 감독 / 김남길, 이영훈 주연 

"니 물건이 권총이었으면 좋겠어. 내 안에서 방아쇠를 당길 수 있게"

고아원생인 수민은 스무살이 되던해 고아원에서 자립하여 서울로 올라왔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학원에서 공부를,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며 씩씩하게 사는 청년이다. 어느날 동성애자인 수민(의 성적 취향)을 알아보기라도 했다는 듯 대리운전 고객이었던 재민이 수민을 유혹하면서 수민의 삶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대리운전을 관둔 며칠 후, 비정규직이었던 수민은 공장에서 해고당한다. 그런데 그를 해고시킨 인사과 담당자가 재민임을 알게되고, 또 한번의 우연한 만남 속에 재민은 수민 대신 다른 사람을 해고시킨다. 그러나 수민은 재민을 받아들일 수 없다. 결국 공장을 그만두고, 접시 닦이를 하던 수민은 게이 호스트바인 X-large에 들어간다.

두가지에서 놀랐다. DV로 서울을 이렇게 아름답게 찍을 수 있다는 것. 어떤 의미에서 화려함은 벽과 같다. 특히 빌딩 숲의 화려한 밤은 개인을 더 고독하게 만든다. '후회하지 않아'는 밝고 건강했던 소년이 돈 때문에 호스트가 되는 고독한 자본주의의 뒷골목에서, 대안없는 젊은이들의 눈에 비친 차가운 서울을 너무나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아름다워서 치명적인 毒,

또 한가지 놀라웠던 것은 이야기의 통속성이다. 이 영화는 계급을 넘어선 사랑과 갈등, 가족의 반대와 배신 그리고 재회라는 멜로드라마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간다. 퀴어영화임에도 '후회하지 않아'가 일반 관객에게 거부감이 적었던 것은 마치 TV 드라마를 보는 듯한 서사의 통속성에 있다. 단지 `남자 - 여'자로 진행되던 방식에, `남자 - 남자'의 새로운 형식을 대입했을 뿐이다. 

놀라운 것은 그 순간 이야기의 통속성이 자연스레 극복된다는 것이다. 사랑의 주체가 `남자 - 남자'로 바뀜으로써 그간 한국 사회가 외면해왔던 사회/문화적인 수많은 기호들이 자연스레 영화 속으로 불려왔다. 그것들이 아마도 '후회하지 않아'가 `지금 여기'에서 중요한 이유일 것이고, 이미 커밍아웃을 한 바 있는 감독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일 것이다.

감독이 이야기의 통속성을 극복하는 방법은 표현의 수위를 높이는 것이다. 단순히 베드신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인물들의 대화 사이에 오가는 직설적인 언어들, 게이 호스트바의 생활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등, '로드무비'(2002)가 좀더 감독의 주관에 치우친 영화였다면, '후회하지 않아'는 예술적 성취보다는 관객과 보다 적극적인 대화를 요구하는 영화 같았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하고 싶은 말들이 정말 많았는데 여러 물리적인 제약 때문에 많은 것들을 덜어내야 했다'고 말한바 있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아'는 수민과 재민의 멜로드라마에 집중하는 영화가 되었다. 하지만 아쉬운 장면들도 있다. 특히 재민이 갑작스레 죽은 가람(김동욱)의 유골을 도로 위에 뿌리는 아름다운 장면에서 그 씬은 끝났어야 했다. (군더더기처럼 붙어있는) 그 일로 인해 재민과 정태가 경찰서에 들어갔다 나오는 장면은 멜로드라마의 시선을 다시 현실로 끌어오며 동시에 감정의 흐름을 단칼에 잘라버린다. 그렇다고 현실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에도 부족한 굉장히 어정쩡한 장면이 되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매우 만족스럽다. 두 주인공을 비롯해 가람이나 정태. 또 마담 역의 정승길까지 모두 빼어난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정승길은 제2의 윤제문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한때 톱스타였지만 작은 영화에 기꺼이 출연한 김정화도 좋아보였고, 재민의 어머니인 김화영(이분은 배두나의 어머니다)씨나, 재민의 아버지로 출연한 이승철(이분은 이청아의 아버지다)씨등 화려한 우정출연진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

spectator's cut
'후회하지 않아'를 보면서 떠올린 영화는 엉뚱하게도 '청연'(2005)이었다. 대리운전을 통해 만나게 되는 두 사람. 계급 차이를 넘어선 사랑 뭐 그런 것들 때문에. 하지만 박경원(장진영)은 꿈이 있었고 그 꿈을 향해 성큼성큼 나아간 인물이었다. 반면 재민은 성공에 대한 막연한 기대만이 있었을 뿐, 삶의 구체적인 목적이 없었다. 단지 수민과의 사랑으로 묘사되는 재민의 삶은 그래서 더 고독해 보였고, 이 영화의 주인공은 재민이라는 특정 인물이 아니라, 빌딩 숲의 화려한 모습을 바라보며 아름다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는 우리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영화는 연결되어 있다. 2007.05.09)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