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이스트우드 '그랜토리노' (Gran Torino, 2008) 옮겨 놓고 싶은 구절들

사실 '그랜 토리노'(2006)는 그 모든 주제들을 낱낱이 해부하고 분석하고 일일이 챙겨가며 가슴 깊이 쑤셔 넣어주는 대신 그걸 스크린 속에서 무수히 체험한 한 사내를 여상한 태도로 보여줄 뿐이다. 영화가 곧 자신인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인지 이스트우드의 손길은 전에 없이 가볍고 거침없다. 마치 우리가 걸음을 걸을 때 한 걸음 한 걸음을 어떻게 내딛을지 신중히 고찰하는 일 없이 그냥 걸어가듯이, 영화를 그렇게 수족을 놀리듯 만들었다. 청소년들이 득시글거리는 이야기의 분위기부터가 그러하고, 그들을 잡는 카메라의 활기찬 움직임이 그러하다. 또 최근 20여 년 동안 이스트우드의 걸작들에서 만날 수 있었던, 망막을 찍어 누르다 못해 뇌에까지 각인되는 묵직한 클로즈업도 더 간결해졌다. 근래 들어 비교적 가장 장르적이고 간결한 이스트우드 영화로 소문났던 '체인질링(Changeling, 2008)' 보다 더 날렵할 지경이다. 카메라가 몇 십 초에서 몇 분가량 고정돼 있는 동안 한 배우가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으로 펼쳐내며 장면을 장악하는 식의 연출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한 배우의 50여년에 이르는 연기자로서의 모습이 '그랜 토리노'라는 영화에 완전히 밀착되어 있기에, 시놉시스만 보아서는 아무나 다 만들 수 있을 듯한 이야기가 오로지 이스트우드만 만들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 세상에서 가장 감수성이 풍부한 감상자를 데려다 놓고 전체 줄거리를 골백번 들려주더라도, 이 영화의 매 장면은 예측불허로 다가올 것이다. 또는 어떠한 위대한 영화인도 '그랜 토리노'를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의 실력이 부족하거나 그들이 삶을 제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스트우드처럼 살아 본 사람은 이스트우드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이 이야기에 매혹을 느끼는 진짜 이유는 복잡하고 정교한 플롯이나 말솜씨 같은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야말로 나 외의 다른 세상을 들여다보는 창구이기 때문이며, 따라서 아무리 익숙한 형태의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 안에 자리한 타인을 진실하게 드러내기만 한다면 언제나 나로서는 예상할 수 없는 경험을 안겨다 줄 수 있음을 증명한다.
- 새벗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