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가십이소 廟街十二少: The Prince Of Temple Street, 1992 영화 일기 - 외국 영화


장가준 감독, 유덕화, 왕조현 주연, 오맹달, 향화강, 증강, 정칙사 출연, 윙팻 프로덕션 제작

"정말 내일 미국에 가세요?"
"홍콩은 기회의 땅이에요. 다릴 잘릴다해도 걱정할 게 없다구요"
"아호, 말해둘게 있네. 생사와 운명은 정해져 있어. 과욕을 부리면 안돼. 현재 홍콩을 주무르고 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지? 물러설 줄도 알아야해. 홍콩을 자네들에게 맡기겠네"
- 영화 초반부, 지도자들의 회의中

"묘가엔 없는 게 없지. 마작, 마사지..."
"십이소! 자네가 두목이니 알아서 처리해. 어떤가?"
"좋아요, 그럼 말하죠. 우린 여기가 터전이에요. 개중엔 예수를 믿는 사람 하나쯤 있어도 괜찮을 겁니다. 3개월 말미를 주고, 그 사이에 투서가 오면 그때 다시 얘기합시다"
- 영화 중반, 작덕판을 돕는 십이소

묘가의 거리에서 발견된 아기를 열두명의 두목들은 당추두(오맹달)에게 키우게 한다. 열두명의 양부를 둔 십이소라는 이름으로 아이는 자라 훗날 묘가의 두목이 된다. 십이소는 지혜롭고 정의로운 품성으로 묘가의 거리는 평화를 유지한다. 어느날 작덕판(왕조현)이라는 여성이 이끄는 종교단체의 전도소가 묘가에 생긴다. 작덕판에 끌린 십이소는 전도소가 묘가에 정착하는데 도움을 준다. 한편 4년전 십이소와 다툼을 벌였던 폭력배 두목 소선이 출소한다. 소선은 십이소에 복수할 틈을 노리고 묘가에는 긴장감이 감돈다.

기대보다 좋은 작품이었다. 홍콩 느와르의 숨은 보석이랄까. 전반적으로 어두운 조명과 살짝 안개가 내린 듯한 화면은 묘가의 시장과 유곽의 색채를 더한다. 작정하고 만든 느와르. 조명과 빛의 사용이 돋보이는 장면들이 많다. 대낮의 장면인데도 어두컴컴한 화면들. 마치 창가에서 쏟아지는 빛이 유일한 광원인듯 인물의 반쪽 얼굴만 보이는 음영효과가 돋보인다.

인상적인 장면도 많다. 특히 소선의 출옥을 알게된 십이소가 화해를 청하기 위해 소선의 아지트를 다시 찾아간 장면이 좋다. 어두운 아지트를 걸어 들어가는 십이소의 모습과 4년전 둘의 싸움이 교차편집되어 자연스럽게 사연을 설명해준다. 격렬한 싸움과 생각에 잠긴 걸음걸이의 효과적인 배치랄까. '올드보이'의 고등학교 회상씬 만큼은 아니지만 이 영화가 199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걸 고려하면 굉장히 고급스러운 편집이다.

내러티브도 좋다. 단순한 영웅의 활약상이 아니다. 양부모에서 자란 십이소의 깊은 고뇌가 느껴지는 장면이 많다. 하이라이트라 생각했던 싸움 장면에서 친구의 배신으로 위기를 맞고, 싸움판에서 벗어나 작덕판에게 안긴 십이소의 모습 또한 인간적이다. 그리고 깊은 여운을 남기는 마지막 장면도..

묘가에 선교활동을 하러 온 작덕판을 옹호하는 십이소. 완벽한 리더처럼 보이지만 사랑에 빠지는 순간 약점이 생긴다. 우리네 삶도 그렇지 않은가. 사랑에 빠지고 가족이 생기는 순간 (그가 남자이건 여자이건 지켜야 할 무언가가 생기는 순간) 동시에 많은 포기할 것들이 생긴다. 이것은 모순일까. 하지만 우리는 주저없이 사랑을 택한다. 특히나 그 사랑에 굼주린채 키워진 십이소. 생각해보니 작덕판이 전하고자 했던 종교의 의미도 결국은 사랑이 아니던가.


(모든 영화는 연결되어 있다. 201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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