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잃어버린 시간의 어딘가에서' - 이지훈 옮겨 놓고 싶은 구절들


도대체 예술이란 무엇인가? 한가지만은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새롭다는 것입니다. 예술은 어쨌거나 새로워야 하는 것입니다. 자, 또다른 문제가 나타나죠? 도대체 새롭다는 것은 무엇인가? 할 말은 많으시겠지만, 제 생각은요, 새롭다는 것은 두 가지가 아닐까요? 첫째는 이전에 보지 못하던 새로운 것을 보게 된다는 소재와 대상의 새로움이구요, 둘째는 익숙하고 진부한 소재와 대상, 그 이전에도 무수히 창작의 재료가 되던 그것들을 새롭게 본다는, 곧 방식과 시각의 새로움이라고 말입니다. 저는 둘째 새로움을 좀 더 가치있는 새로움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로트만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의 낯익은 세상은 시간과 공간을 본질로 하고 있는데, 이 세상을 얘깃거리 삼아 예술 창작을 하고 싶다면 무엇보다 당연히 시간과 공간을 보는 새로운 눈, 즉 시간과 공간의 변형과 왜곡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중략)

저는 정말로 감동 또 감동을 받았던 몇 편의 시간 영화들을 기억합니다. 그중 하나가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러브레터'(1995)인데요. 이런 장면이 나와요. 오타루라는 북해도 연안의 작은 도시로 답장의 주인공을 찾아 떠나는 와타나베 히로코. 거기서 그녀는 편지를 주고받은 상대 후지이 이츠키와 우연히 만나는 상황을 겪게 됩니다. 넓은 도로변이었는데요, 1인 2역을 한, 두 명의 여배우가 교차하기 직전, 내레이션은 '그런데 흥미로운 정보를 하나 알려 드리겠습니다'였어요. 그리고 두 여인은 약간의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마주칩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상대는 군중 속으로 사라지고, 다시 내레이션이 들립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정보를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똑같은 내레이션이지요. 
만일 이 두개의 내래이션이 반복된 것이 아니라, 한번의 멘트 였다고 생각하면, 두 사람이 만나는 상황은 시간의 간극 속에 실재론 존재하지 않았을 비현실적인 상황이라는 얘깁니다. 그래서일까요? 영화의 마지막에 주인공이 펼쳐든 책은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였습니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 그러나 그 시간 동안에 벌어진 너무나 소중한 만남이 제겐 커다란 감정적 파동을 일으키며 다가왔습니다. 
- 이지훈, Nega 3호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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