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서양회화의 해방이자 동시에 완성이다 - 앙드레 바쟁 옮겨 놓고 싶은 구절들


그러므로 회화는 더이상 유사성이라고 하는 점에서는 사진보다 열등한 기법의 하나, 몇 가지 재현방법의 대용수단의 하나에 불과하다. 우리의 무의식의 저 근저에는 사물에 대하여 그것을 대강 전사하는 것이 아닌, 그 사물 자체의, 그러나 일시적인 우연성으로부터 해방된 그 사물 자체를 좀더 완전하게 무언가에 의해 대체시켜보고자하는 욕구가 있는 바, 이러한 욕구를 충분히 발전시킬 수 있을 것 같은 사물의 화상을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사진 렌즈 밖에 없다. 앨범 사진의 매력은 거기서 발생한다. 거의 알아볼 수 없는 유령 같은 회색 또는 갈색의 저 그림자들, 그것들은 더 이상 전통적인 가족 초상화가 아니다. 그것은 예술의 마술적인 효과에 의해서가 아니라 비정한 기계장치의 효과에 의해 자신의 시간 속에 정지되어서 자신의 운명으로부터 자유로와진 생명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현존인 것이다. 왜냐하면 사진은 예술처럼 영원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대해 방부처리를 행하여 다만 시간을 그 자신의 부패로부터 지킬 뿐이기 때문이다. 

(중략)

그런고로 사진의 출현은 바로 조형예술사에서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여겨진다. 해방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완성이기도한 사진은 서양회화가 사실에의 집념을 결정적으로 떨쳐버리고 그 미학적인 자율성을 회복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인상파의 리얼리즘은 그 과학성을 구실로 하여 마치 실물인 듯 착각을 일으키는 눈속임 화법과는 정면으로 대립적인 위치에 섰다. 색체는 형체가 더 이상 모방이라고 할 만한 값을 지니지 않을 때에야 그 형체를 침식할 수가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세잔과 더불에 형체가 다시금 캔버스를 점유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회화는 어떤 경우에도 투시화법의 착각적인 기하학에 따르는 일이 더 이상 없었다. 사진의 기계적인 영상은 회화와 경쟁을 벌이며 바로크풍의 (이상 야릇한) 유사성을 넘어서 모델과의 동일성에까지 도달하는데서 회화가 그 자신 쪽에서 한낱 사물로 바뀌어질 수 밖에 없도록 했다. 
그 이래, 회화에 대한 파스칼류의 비난은 헛된 일이 되어 버렸다. 왜냐하면 사진 덕분에 우리는 한편으론 우리의 눈이 아직껏 사랑할 줄을 모르던 원본(자연의 사물)을, 그것을 재현한 영상 속에서 보고 감탄하도록 되고 또 다른 한편으론 자연을 참조하는 것을 자기정당화의 이유로 삼는 일을 그치는 하나의 순수한 사물을 회화속에서 보고 감탄할 수 있도록 되었기 때문이다. 
- 앙드레 바쟁 '영화란 무엇인가'中 사진적 영상의 존재론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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