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어두워지기 전에 - 정이현 독서 일기 - 시와 소설

1. 서두와 배경과 캐릭터 

남편은 일곱번째 맞선 파트너였다. 스물아홉 살 가을의 일이다. 엄마는 그 해가 지나면 자신과 딸의 인생이 종말을 맞이하기라도 한다는 듯 조급하게 굴었다. 9월과 10월, 일곱번의 일요일마다 나는 맞선용으로 구입해놓은 샤넬 라인의 원피스를 입고 새로운 남자들을 소개받았다. 날씨가 추워져 새로운 옷이 필요해지기 전에 다행히 지금의 남편에게서 애프터 신청을 받았고 우리는 이듬해 3월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장 양가의 분위기 : '국회의원 선거에서 가장 보수적인 정당의 후보자에게 투표하는 것 까지 양가의 분위기는 여러모로 비슷했다' - 결혼한 지 4년이 되도록 임신이 되지 않자 - 섹스리스 부부.  

한 달에 한 번쯤 간헐적으로 있었던 부부관계는 결혼 1년 뒤부터는 느슨히 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하더니 곧 전무해졌다. 부부 사이에 전에 없던, 둘만 아는 어떤 기묘한 친밀감이 생겨나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그 무렵 부터라고 나는 믿고 있었다.

가끔씩 한약을 지어오는 어머니들

2. 사건의 시작  

윗집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일요일이었다. 사건 현장의 최초의 발견자는 아이의 엄마. 서너살 쯤 된 아들의 손을 항상 꼭 붙들고 다니는 하얗고 깡마른 여자였다. "애 혼자 두고 잠깐 나갔다 왔는데 글쎄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고 있더래" 나는 상가 정육점에서 들은 얘기를 남편에게 전해주었다. "그래?" 마룻바닥에 신문지를 펼쳐놓고 발톱을 깎고 있던 남편이 고개를 숙인 채 별 감흥 없이 말했다.

남편의 반응. 돌연사구나?, 군대 내무반 선임의 돌연사 이야기. 남편으로 모아지는 초점. 전국 노래자랑을 보며. "저러고 싶을까". 냉소적인 목소리가 어쩐지 심드렁하게 드렸다. '윗집 아이가 내는 소음을 나보다 훨씬 더 못참아 한 쪽은 남편이었다' 

쿵쿵쿵쿵 아이가 온 힘을 다해 제자리 뛰기라도 하는 듯한 소리가 천장에 둔중히 울려 퍼지던 어느 날에는 마룻바닥에 리모컨을 확 패대기쳤을 정도였다. 에이씨, 저 새끼 모가지를 확 비틀어 버려. 평소 남편의 말투와 너무 달랐기 때문에 그 장면은 더 극적으로 내 머리에 각인되어 있었다.

MBA를 준비하는 남편의 정기적인 외출. 학원과 스터디 그룹 모임

3. 전개 1) - 동네의 소문과 남편의 과민반응

동네 반상회. 흉흉한 소문. "안 그래도 우리 동 전망이 나쁘다고 가격이 안 오르는 판인데 이런 일까지 잘못 소문나면 어쩌겠어요?", 죽은 아이 엄마의 행적 서술. 무서운 소문들. "독.살.같대", 남편의 귀가. '가끔 우리 부부의 대화가 텔레비전 단막극 속의 대사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남편이나 나나 일류 배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설픈 삼류도 아니리라고 믿는다', 남편의 과민 반응. "그런 한심한 여자들 입방아를 믿어?" "괜히 얼토당토않은 루머 같은 거 믿지마. 진실이라는 건 그렇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야"  

논리와 비약과 허둥거림, 전혀 남편답지 않다. 나는 의아했다.
"여보, 왜 그래? 밖에서 무슨 일 있었어?"
남편이 휴우, 짧지 않은 한순을 내쉬었다.
"어, 모르겠다. 내가 왜 이러냐. 피곤해서 그런가 봐."
그의 얼굴에 막막한 불안감이 스쳐 지나는 것을, 나는 보고야 말았다.

4. 전개 2) 수사관의 방문, 시작된 의심

묘사. 
수사관은 자신을 윤이라고 소개했다. 남자는 내가 평소 막연히 상상했던 강력계 형사의 이미지와는 달랐다. 번들거리는 검은 가죽 점퍼를 걸치지도 않았고, 살쾡이처럼 안광이 날카롭게 빛나지도 않았다. 그는 골지의, 몸에 많이 붙는 쫄 티셔츠 차림이었는데 남편이라면 아무리 부탁해도 걸치지 않을 그런 스타일이었다. 어쩐지 여교사 앞에서 수줍어하는 다 자란 고등학생의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였다. 나는 1주일째 청소하지 않은 마루바닥의 상태가 자꾸 신경 쓰였다. 

"강지원 군 사건과 관련해서 몇 가지 여쭈어 보겠습니다. 아시는 대로 편안하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윗집 아이의 이름이 강지원이었나 보았다. 강지원, 지원이. 그러겠다는 의미로 심호홉을 한 번 하고 양손을 깍지끼워 무릎 위에 얌전히 올려놓았다.

"용의주도한 놈입니다. 지금까지의 증거물이라고는 250밀리미터의 족적 뿐이지요. 250. 여자라고 할 수도 없고, 남자라고 할 수도 없는 치수 아닙니까" 이어서 당연하다는 듯 수사관은 나의 발 사이즈를 물어왔다. (중략) 남편의 발 사이즈가 250밀리미터라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총기류 사이트를 보고 있는 남편. 의외의 취향. 내가 몰랐던. 윗집 아이 빈소 조문 문제로 언쟁하는 두 사람. 

"당신, 나한테는 솔직하게 말해도 되지 않아?"
"뭘 또? 피곤한 사람한테"
"...... 학원에 전화해봤어. 수강생 명단에 당신 이름 없다던데?"
"허...... 그게 무슨 소리야? 당신이 무슨 스토커야?"
남편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완강히 다문 입에서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빈소에 조문을 다녀오다. 

미리 준비한 흰 봉투 안에는 빳빳한 만원 권 열 장을 넣어두었다. 강보에 싸여있을 때부터 보아온 아이에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었다.

5. 절정 혹은 전환, 남편의 예상치 못한 고백

남편의 회사를 찾아가다. '내 전화를 받은 남편은 소스라치게 놀라는 눈치였다. 그는 오래지 않아 나타났다. 양복 저고리는 벗은 채 내가 다려준 입생로랑 와이셔츠와 내가 사준 닥스 넥타이를 맨 차림새였다. 

"왜 그랬어?"
남편이 갑자기 테이블에 얼굴을 박았다.
"불쌍한 여자야"
파국은 엉뚱하게 왔다. 나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그의 고백을 경청했다.
"그 새끼, 회사를 휘저은 걸로도 모자라, 당신까지 찾아가다니. 여보, 정말 미안해. 이런 꼴 보이는 게 아닌데. 하지만 우리. 세상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떠드는 그런 이상한 사이 아니야. 우리 정말 순수하게, 그래, 인정할 게, 순수하게 좋아하는 사이야. 아아, 일이 어떻게 이렇게 꼬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이니까, 다른 여자들하고는 다르니까, 이해해줄 거 라고 믿어"
진실은 자명했다. 남편과 사귀던 회사 여직원의 남편이 며칠 전 사무실을 급습했다.

(중략)

남편은 도와달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래서 당신이 죽인 거야?"
내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남편이 나를 멍하니 건너다보았다.
"왜 그랬어? 아직 아기들이잖아. 불쌍하잖아. 왜 그랬어, 왜 그랬어."
"진정해, 여보, 미안해. 내가 잘못했다. 제발 정신차례"
남편이 입을 막을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앉아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울대뼈가 짜릿했다. 나는 그의 뺨을 후려치지도 못했다. 우리 부부는 역시 일류배우는 못 되는 모양이었다.

6. 결말 

알면서 모르는 척, 모르면서 아는 척.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나는 임신을 결심하다

남편은 그날 나에게 애원했던 일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있을까, 궁금했다. 내가 맹렬히 질투했던 대상이 그들의 관계가 아니라 그토록 유치한 열정이었음을 인정하기 싫은 것처럼 그도 그렇겠지, 짐작할 따름이다. 우리 부부는, 우리는, 여전히 침대의 양 끝단에서 잠을 잤다. 훼손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윗집 여자와는 이따금 엘리베이터나 근처 슈퍼마켓에서 마주쳤다. 그녀와 나는 여전히 눈인사만 나누었다. (중략) 노인들의 충고는 대체로 옳았다. 아이를 키우는 지난한 희생의 과정을 거쳐야만 사람은 비로소 어른이 된다. 가임기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걸 이제야 알게 되다니. 완전한 가정을 이루려면 아이는 반드시 필요했다. 최근에 나는 어떻게 해서든 임신을 해야겠다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다. 문을 결국 열리거나 닫힌다.

7. 비평 

결국 이 아내는 스스로를 속이는 것으로 평범한 삶을 선택했다. 얼마나 더 속고, 속여야 그녀가 바라는 완전한 사랑을 얻을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거짓’을 생활 속에서 분리시키는 일은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노른자와 흰자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계란찜처럼. 한 냄비 속에서 뒤섞이고 끓고 나면 그뿐이다. 그냥 계란찜이다. 거짓이니 위선이니 따지기에는, 삶은, 너무 빨리, 흘러가버린다. - 매일신문 리뷰 中

정이현의 소설들은 지금 당신들이 살고 있는 현실이 시시각각 붕괴의 시간이 다가오는 삼풍백화점과 얼마나 다른가라고 묻고 있다. - 박혜경 문학평론가

8. 감상

살인 사건이 등장하지만 소설은 일상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정이현의 소설은 여전히 도시적이고, 단절된 서로의 삶 안에서의 거짓과 위안을 이야기 한다. 결말 또한 작가의 전작들이 보여준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긴장감이 살아있고, 새롭지 않지만 여전히 신선한, 소설이다.
 

(2015.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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