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전기수 이야기 - 이승우 독서 일기 - 시와 소설

1. 발단 - 전기수 사업을 하는 아내. 백수인 내가 직원 대신 화자로 출장을 가다

같은 일이 반복되거나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그게 일상이지. 다른 사람이라고 뭐 다를라고. 그 시절, 다섯 개나 되는 생활정보지와 두 개의 무료 신문을 샅샅이 뒤지고 동그라미를 치거나 밑줄을 긋거나, 그러다가 전화를 걸어 정보지에 실린 내용이 맞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중요한 하루 일과였다.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입맛에 맞는 일자리를 찾기가 참 어렵더구만. 언뜻 보기에 그럴듯한 것일수록 조심해야 한다는 걸 여러 차례의 경험을 통해 터득했지. 팔기 힘든 물건을 허약한 연줄을 이용하여 떠넘겨야 하는 판매직이거나 별 볼일 없는 영업직이 대부분이거든. 이를테면 월 수 500 보장 운운 하는 광고는 일단 제쳐두어야 한다고. 이사직을 구한다거나 공동 투자 운운하는 경우도 마찬가지. 오전에는 청소기와 세탁기를 돌리고, 맨날 쓸고 닦아도 어디서 먼지가 그렇게 나오는지. 하루를 그냥 넘길 수 없다니까. 오후에는 저녁 준비를 하기 위해 시장에 가야 했어. 아내는 보통 일곱 시가 넘어서 들어왔지. 일주일에 평균 두 번은 야근을 했고, 그런 날은 자정을 넘겨서, 대개 술 냄새를 풍기며 돌아오니까. 미리 이야기를 해주면 저녁 준비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을 텐데 무슨 심술인지 아내는 예고를 하지 않아. 그녀는 내가 물어보지 않았으니까 말하지 않은 거라고 할지 모르고. 그건 물론 사실이지만, 그것이 그녀가 이야기를 하지 않은 참된 이유인지는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지.

"한집에 사는 마누라 목소리도 못 알아듣는단 말이야. 아, 짜증나" 그러고 보니까 아내의 목소리가 맞는 것 같기도 했어. "당신 맞아?" 나는 약간 기가 죽은 목소리로 물었지. 아내는, 어떻게 아침에 나간 마누라 목소리를 잊어먹어. 세상에, 이건 평소에 당신이 나를 얼마나 소홀하게 생각하는지를 증명하는 증거라고, 아, 억울해. 어쩌구저쩌구 투덜거리더라고. 나는, 그녀를 소홀하게 생각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문제에 대해 섣부르게 대답할 수는 없지만, 전화 목소리를 바로 알아 듣지 못한 것이 그녀는 소홀하게 생각하는 산 증거라는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었어. (...)

아내는 무조건 빨리 나오라고 다그쳤어. 뭔지 모르지만 사정이 꽤 급한 거 같더라구. 나는 약간 주눅든 목소리로 어디로? 왜? 하고 물었지. "어디긴, 사무실이지. 아, 참, 여기로 안 와도 되겠다. 곧바로 그쪽으로 가면 되겠구나. 주소 받아 적어." 뭔 소리야? 하고 물을 때 나는 고드름장아찌 같은 내 일상의 보이지 않는 질서가 조금 일그러지는 모습을 보았고, 그 때문에 귀찮아졌을 거야. "이 사람, 아주 중요한 회원이야. 비위를 잘 맞춰야 해. 담당 화자가 병이 났어. 웬만하면 나오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대. 몸이 펄펄 끊는다잖아. 약을 먹어도 안 듣는다네. (...) "어려운 것 없어. 그냥 책만 읽어주면 돼. 자료를 파일로 보내줄게. 이 고객 프로필하고 약도도 같이. 지금 메일 열어봐. 한 시간 반 남았으니까 서둘러야 될 걸. 옷은 아주 단정해야 해.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는 게 좋겠어. 머리 감고 면도도 하고, 알았지?"

2-1. 전개 - 베일에 쌓인 그 남자를 만나다

"전기수? 그게 뭐야? 전기 기술자를 줄인 말인가?" 내가 심드렁하게 대꾸하자 그럴줄 알았다는 듯이 빙그레 웃고 나서 전기수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어. 마치 물어올 것에 대비해서 외워두기라도 한 것처럼 가지런하고 막힘이 없었지. 신나하는 것 같기도 했어. 전기수란 조선시대에 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거리에서 이야기책을 전문적으로 읽어주던 낭독자를 말하는데, 조선 후기에 활동한 조수삼이라는 문인이 쓴 '추재집'에 그 기록이 나온다고 하더군.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중국으로 부터 '삼국지'나 '수호지' 같은 소설들이 이 땅에 들어오게 되었고, 그에 따라 소설과 이야기에 대한 관심이 점차 증가하게 되었다는 것,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 서울 거리에 소설책을 읽어주거나 옛날이야기를 전해주면서 일정한 보수를 받는 직업적인 이야기꾼이 등장했는데 이런 사람을 전기수라고 불렀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어.

나는 조선시대에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지만, 그녀가 무엇에 흥미를 느끼고 있는지 분명하게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에... 책은 넘쳐나고, 넘쳐나지만 더 신나고 재미있는 것도 넘쳐나니까 거들떠보려고도 하지 않는 판국 아니냐고... 그들은 소통에의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물론 외톨이라는 사실조차 들키고 싶지 않거든... 꾸준히 회원수가 늘어나고 있는 걸 보면서 아내의 판단이 정확했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지. 직장 잡기가 어려워서 그런지 화자를 하겠다고 신청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해... 

남자. 59세. 과묵하고 명상적인 성격. 음악 애호가(거의 항상 이어폰을 귀에 꽂고 지냄). 잠언 투의 에세이나 종교적 성격의 글을 선호.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막시 삐까르트의 '침묵의 세계',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성경의 '잠언'과 '전도서', 가끔 산책에 동행할 것을 요구함

몇 줄로 요약된 내 첫 고객은 어딘가 비밀스러운 취향을 가진 사람처럼 여겨졌어. 정보가 제공되는 이런 방식 속에 비밀스러운 성격이 어느 정도 가미되어 있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심상치 않은 느낌을 갖게 하기에 충분한 내용이지 않아? 나는 아내가 주문한 대로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면도를 하고 양복을 입었어

낭독을 하는 틈틈히 노인의 눈치를 살폈어. 그의 표정에는 어떤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어. 노인이 내용을 새겨듣고 있는지 어떤지 알 수가 없으니까 답답하더구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내 목소리가 그의 귀에 들리기나 하는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어.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 말이야. 만일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거지? 상대의 끈질긴 무반응은 나를 거북하게 하고 어이없게 하고 불안하게 하고 굴욕감을 느끼게 하고, 마침내는 자기 연민에 빠지게 했어. 알아들을 귀가 없는 사람을 향해 무슨 말인가를 끊임없이 내놓아야 하는 일의 무의미함이라니. 의미없는 행동을 반복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형벌인지는 코린트의 왕 시시포스의 교훈을 통해 잘 알려져 있지 않나. 자꾸만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되풀이해서 밀어올려야 하는 그 형벌이 무서운 것은 육체적으로 힘들기 때문이 아니라 그 반복이 굴욕과 권태를 선물하기 때문이지.

(...)

그리고 마침내 나는 내 눈 앞에서 끄덕도 않는 노인의 눈치를 힐끔힐끔 보며 톨스토이를 읽어주다 말고 사람들은 나를 쉽게 읽어내는데 나는 사람들을 잘 읽어내지 못하거나 전혀 읽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야. 그것은 꽤 중요한 깨달음인 것처럼 여겨졌어. 그러자 마음이 심란해졌고, 더 이상은 무의미한 낭독을 할 수가 없어졌어. 톨스토이를 읽어낼 수가 없더란 말이야.
그렇다고 그 집에 들어온 지 15분도 채 안 된 상태에서 그냥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어. 얼마 동안이나 화자 노릇을 해야 하는지 아내에게 묻지 않은 것이 후회되더군. 그렇지만 어쩌겠어. (...) 다시 눈꺼풀이 덮어버리기 전에 그의 눈동자를 붙잡아야 했어. 깜깜한 구멍과도 같은 눈동자라도 말이야. 그러기 위해서는 낭독이 아니라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지.
들어봤어요? 하고 말할 때 내 목소리는 저절로 빨라졌어. "아시아 어느 나라에서는 거북이를 신으로 떠받드는 부족이 있대요. 거북이가 알을 낳으면 유모 격인 사람들이 달라붙어 정성스럽게 관리를 한대요. 거북이는 원래 초식을 하는데, 풀만 먹어서는 기운이 허해진다며 가끔 보약을 해 먹이기도 한다는 군요..."

2-2. 전개. 그 남자의 정체

아내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내게 물었어. "어떻게 한 거야? 도대체 어떻게 한 건데, 이 까다로운 양반이..." ... 무슨 소리야? 나더러 거기를 또 가라고? 그 끔찍한 노인에게? ... 초점이 없는 무생물의 눈을 향해 무슨 말인가를 끊임없이 토해내야 하는 일은 끔찍하긴 마찬가지였어... 나는, 이 고객의 경우 낭독이 아니라 이야기, 혹은 대화의 형식을 취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어...  

언젠가 내가 노인이 어떤 사람인지 물은 적이 있어. 뜻밖의 질문을 받았다는 듯, 아니면 금지된 질문이라는 된다는 듯 내 얼굴을 한참 쳐다보더군. 나는 정말로 궁금해서 질문한 것이 아니라는 뜻을 전하기 위해 어깨를 으쓱하고 가볍게 손을 흔들었어. 그랬더니, 어떤 사람인지 알면 아마 좀 놀랄걸요? 하고 스스로 말하는 거야. 나는 어떤 사람인데요? 하고 다시 물었는데 여자는 곧바로 말을 잇지 않았어. 나도 재촉하지 않았어. 어쩐지 재촉하면 안 될 것 같았거든. 한참 동안 말없이 앉아 있던 여자가 내 찻잔이 빈 걸 확인하고는 쟁반을 챙겨서 일어났어. 그리고는 중얼거리듯 말했지. "자기를 다시 불러줄 날을 기다리며 30년을 숨어 살고 있는 사람이 저 양반이에요. 귀머거리에 벙어리를 자처하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희미한 약속 하나만 믿고... 몸까지 저 지경이 되었으니, 이젠 불러도 소용없게 되었는데, 그래도 그 소식 하나만 기다리며 사네요. 생각해보면 참 불쌍한 사람이지요..." 무언가 사연이 있을 거라는 짐작은 하고 있었으니까 새삼스럽지는 않았지만, 그정도만 들으니까 어떤 사연인지 더 궁금해지긴 하더구만.

그는 내 이야기를 듣는 것 같기도 하고 듣지 않는 것 같기도 했어... 들음으로써 그가 얻는 것보다 말을 함으로써 내가 얻는 이득이 크다면 누가 누구에게 의지하고 있는거지?...한상철과 나 사이에 그런 식의 묘한 공생관계가 한동안 이어졌지... 

3. 절정. 기다림의 끝

어느 순간이었어. 노인이 갑자기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키며 가쁜 숨을 몰아쉬더니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고꾸라지는 거야.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만 아마도 무리하게 몸을 일으키려고 하다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넘어진 모양인데 그때 마침 정신적 충격이 더해지면서 의식을 잃은 것 같았어. 짐작이 그래. 나는 다급하게 여자를 부르고는 노인이 손으로 가리키는 지점을 바라보았어. 하지만 그곳에서 그가 무엇을 보았는지는 알 수 없었어. (...)

"다 끝났어요. 평생을 바친 저 양반의 그 긴 기다림이 결국 이렇게 마무리되네요." 나는 여자의 말이 선문답처럼 여겨졌어. 답답했지. 뭐가 끝났다는 거에요? 하고 물을 수 밖에. "저 양반 누군지 알면 깜짝 놀랄 거라고 했지요?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오래전에 유력한 전직 고위 관리 한명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적이 있어요. 세상이 오랫동안 시끌시끌했지요. 사건의 진상은 밝혀지지 않은 채로 세월이 참 많이 흘렀네요. 많이 잊혀지기도 했고요. 하지만 저 양반은 이 순간까지 잊지 않고 살아왔어요. 반평생을 입을 다문 체 숨어서 살았어요. 자기를 불러줄 날을 기다리며. 입을 열지 않은 것은 잊었기 때문이 아니라 잊혀지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잊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최고 실력자였던 윗사람이 잠깐 몸을 숨기고 입을 다물고 있으면 곧 불러주겠다고 했거든요. 그 세월이 30년이에요. 잠깐의 시간이 너무 길었지요... 그런데..." 그렇게 죽음의 그림자를 풍기는 노인의 몸을 해가지고도 그 시절의 상사가 자기를 다시 불러줄 거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이해할 수 있어? 인생이란 외롭지도 않고, 잡지의 표지처럼 그저 통속할 뿐인데 말이야. 하긴 나중에는 그 기다림이란 게 그다지 절실하지도 않고, 그저 습관에 지나지 않은 게 되었겠지만.

4. 결말 

여자가 해준 말이지만, 당사자인 한상철의 입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어. 그래. 그 노인이 직접 자기 이야기를 했어. 아, 물론 나도 그때는 그날이 마지막이 될 줄 알았지. 그런데 한 달쯤 지났을까, 이 양반이 다시 나를 부른거야. 기분은 좀 그랬지만, 안 갈 수가 있나. 사실 안 갈 이유도 없었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좀 고민이 되더군. (...)
집에 들어갔더니 전보다 한층 건강해진 이 양반이, 정말이야, 곧 휠체어도 버리고 일어나겠더라고. 글쎄, 불쑥 이러는 거야' "오늘은 내가 화자할 겁니다. 오늘은 김 선생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그러고는 곧바로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 쉬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갔지. 길고 어둡고 놀랍고 뜨거운 이야기였어. 어찌나 열중해서 이야기를 하는지 듣는 내내 저 사람이 저 이야기를 하지 않고 어떻게 여태 살 수 있었는지 의문이 생길 정도였어. 그리고 그가 자기 이야기를 다 끝냈을 때, 이런 생각이 들더군. 그가 기다린 것은 불러줄 타인의 목소리가 아니라 자기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그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오기를 기다린 것이 아닐까. 그가 기다린 것은 기다리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한순간도 이어폰을 귀에서 떼지 않고 라디오를 들은 것이 그 때문은 아니었을까...
(...) 그 양반,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얼마 있지 않아서 숨을 거뒀으니까 그게 일종의 고해성사였을 거야.


감상

꽤나 근사한 서사를 품고 있는 소설이다. 독자의 상상으로 채워 넣을 수 있는 여백이 많은 것도 이 소설의 미덕이다. 

구어체의 문장은 이 소설 또한 마치 '전기수'가 들려주는 이야기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서울, 21세기 전기수'의 회원이 되어 사내에게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이다. 구어체 문장들이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금방 익숙해지더니 어느새 내가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승우의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문장의 힘 덕분일 것이다. 과연 작가의 내공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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