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고해기도 - 보들레르 옮겨 놓고 싶은 詩들

예술가의 고해기도

가을날 하루의 끝은 얼마나 폐부를 찌르는가! 아! 괴롭도록 찌르는구나! 몽롱하다고 해서 통렬함이 사라져버린 것은 아닌 어떤 감미로운 감각이 존재하려니와 무한의 첨단보다 더 날카로운 첨단은 없는 법이기에.
하늘과 바다의 광막함 속에 눈길을 담근다는 그 크나큰 환희! 고독, 정적, 창공의 비할 데 없는 순결함! 그 약소함과 고립으로 내 치유할 수 없는 삶을 닮아, 수평선에서 떨고 있는 조그만 돛, 물결의 단조로운 멜로디. 이 모든 것들이 나를 통하여 생각한다. 아니 그것들을 통하여 내가 생각한다. (몽상의 장대함 속에서, 자아는 이내 소멸해버리고 말지 않는가!) 그것들이 생각한다. 나는 말하는데, 그러나 궤변도, 삼단 논법도, 연역법도 없이, 음악적으로 회화적으로 생각한다.
이 생각들은 나에게 나왔건 사물에게 쏟아져 나왔건 간에, 금세 너무나 강렬해진다. 관능에 싸인 힘은 불편과 실제적인 고통을 빚어낸다. 너무나 팽팽한 내 신경은 소란하고 고통스러운 떨림만을 내보낼뿐이다.
그리하여 이제 하늘의 그윽함이 나를 아연실색하게 하고, 그 청명함이 나를 못 견디게 다그친다. 바다의 무심함, 자연경관의 요지 부동함에 나는 분노한다... 아! 영원히 괴로워해야 할 것인가? 자연이여, 무자비한 마녀여. 언제나 승리하는 적수여. 나를 놓아달라! 내 욕망과 내 오만을 더 이상 시험하지 말라! 미의 연찬은 하나의 결투, 그 싸움에서 예술가는 패배하기도 전에 공포의 비명을 지른다
- 보들레르, '파리의 우울'中

잠들기전 모든 감각이 깨어있을 때, 
시계 초침은 얼마나 크게 들리던가
잠든 아이의 숨소리는, 창을 두드리는 바람 소리는, 
구름의 이동 속도는, 저 달의 눈부신 밝기는.

시인은 깨어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연 앞에, 그 무자비한 마녀 앞에
공포의 비명을 지른다. 오직 깨어있는 자만이
미의 연찬에 초대 받는다. 비명을 지를 권리를 갖는다. 

보들레르는 끊임없이 자신을 흔들어 깨웠다.
제 목을 잡고 흔드는 그 거센 손길이
150년이 지난 지금도 수많이 이들의 영혼을 흔들어 깨운다 

(2015.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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