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연재] 아이도스 aidos - 이기호 독서 일기 - 시와 소설

PART.1 (AXT 1호)

1. 집단 자살현장 뉴스 

지금으로 부터 정확히 일주일 전인 2015년 5월 1일 오전 8시 30분경, 서울 소방재난본부에 한 통의 신고전화가 걸려왔다. 전하ㅗ를 건 사람은 오십대 중반의 여자였는데, 다세대 삼층에서 무언가 심하게 타는 냄새가 난다는 내용이었다. 이층에서 삼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사이에도 희미하게 연기가 끼어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

그 뒤에 드러난 사실은 다음날인 5월2일자 조간신문에 일제히 실린 기사들을 참조하면 된다. 안방과 작은방, 거실 겸 주방, 욕실로 이루어진 17평형 다세대주택 삼층에서 발견된 사망자는 모두 네 명이었다. 남자 세 명, 여자 한 명, 사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은 안방 침대와 침대 바로 아래 방바닥에 각각 이불을 덮고 반듯한 자세로 사망해 있었고, 삼십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자는 작은방 이불 위에 엎드린 자세로 발견되었다. 나머지 한 명은 현관 입구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작은방과 안방에선 연탄 화덕이 하나씩 발견되었고, 창문과 방문 틈새는 겹겹히 청테이프로 막혀 있었다.


2. 나는 아내의 경제적 지원 아래 글을 쓰는 작가 / 죽은 사람들은 내가 아는 사람들이다 / 이것은 자살이 아니라 강세형에 의한 살인사건이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천안아산역 앞 한 오피스텔에서 쓰고 있다... 애초 나는 이 이야기를 글로 쓸 생각 같은 것은 하지 않았지만.... "아니, 장편이 써질 거 같아서."... "이따 저녁에 계좌로 돈 좀 보낼게요. 비타민도 꼭 챙겨먹고요".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오늘은 5월 8일이다... 어쨌든 그는 죽었고, 나는 여기 살아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까.. 아마 이 글이 무사히 완성되고 나면, 그것들보다는, 내가 이 사건에서 얼마나 미미한 역할을 했는지, 주로 그것을 입증하려는 성격의 원고가 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그렇게 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쩌면 미리 그렇게 단정하고 이 글을 써나가는 것이 더 정직한 자세일지도 모른다. 산 사람의 글은 대부분 그런 성격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소설이든, 소설이 아니든...

그러나 나는 뉴스화면에서 구기동 다세대주택의 모습을 본 순간, 반사적으로 사망자 한 명이 바로 강세형이라는 것과, 죽은 세 사람 또한 모두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동시에 이것은 집단 자살이 아닌, 한 사람에 의한 살인사건이라는 생각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경찰이 사망자 약물 검사를 실시했다면 알아냈겠지만, 그들의 혈액에선 아마도 다량의 수면제 성분이 검출되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는 그들의 사망원인이 자살에서 피살로 뒤바뀌는 일은 없겠지만... 핵심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들이 그것을 알고 마셨는가, 모르고 마셨는가. 그것에 따라 사망원인은 자살에서 피살로 달라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 추측이 맞다면 아마도 네 명의 사망자 중 한 명의 사망자 시신에선 수면제 성분이 검출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망자는 현관 바닥에 쓰러져 있던 사람이 분명할 테고, 그 사람은 바로 강세형일 가능성이 높다. 그가 내게 말한 계획과 유일하게 달랐던 한 부분, 그건 바로 그 자신의 죽음이었으니까.
  

3. 강세형과의 인연은 한 통의 편지 / '저도 작가님과 흡사한 불안을 느껴본 적이 있습니다'


시작은 한 통의 편지로부터 비롯되었다. 그해 1월인가 2월의 어느 하루 나는 편지 한 통을 받게 되었는데, 보내는 사람엔 그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주소는 경기도 군포시 군포 우체국 사서함 20호라고 적혀 있었다. 그 주소만 보고도 나는 그것이 대충 어떤 내용의 편지라는 것을 눈치챘고, 그래서 봉투를 열어보지도 않은 채 신문과 잡지를 꽂아두는 수납함에 바로 넣어버렸다.

(...)

그 편지의 내용은 ... 살인치사 혐의로 9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중인 이십대 후반 남자의 편지... 그리곤 마지막에 이제 출소를 하게 되면 중장비 기사를 하면서 새 삶을 살 작정인데, 이곳에서 미리 필기시험을 준비할 교재가 필요하다. 팔만원만, 아니 사만원이라도 작가님이 보내주면 커다란 보탬이 될 것이다, 바라옵건데 한 사람의 희망을 꺾진 말아달라... 사흘 후인가, 우체국에 들러 팔만원을 우편환으로 바꿔 그에게 보내주었다. 그러니까... 그게 시작이었다. 그해에 나는 총 여섯 통의 군포 우체국 사서함 20호 주소가 적힌 편지를 받았고(물론 보내는 사람은 다 제각각 이었다)...

(...)

나는 그러니까 (어머니가) 말을 걸지 말아달라는 의사표시로, 가만히 책상에 앉아 아무 생각없이 그 편지를 읽어 나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자세를 바로잡고 온전히 그 편지에만 몰두하게 되었다. 지금도 일산 아파트 내 책상 서랍 제일 아래 칸에 보관되어 있는 그의 첫 편지는 모두 열한장으로 되어 있었는데, 다른 편지들과는 달리 자신의 이야기는 거의 씌어있지 않았고, 오로지 내가 낸 첫 번째, 두 번째 소설책에 대한 이야기로만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그러니까 그건 일종의 독후감 형식의 글이었다. 하지만 나는 편지의 첫 장을 다 읽기도 전에 그것이 단순한 독자의 독후감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건 어떤 느낌이었느냐 하면, 마치 내가 쓴 소설에 대한 내 독후감을, 내가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해서 내 무의식을 내 눈 앞에 세목마다 따로 분류하고 배치해서 정리해놓은 듯한 그런 캐비닛을 마주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본래 작가란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썼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존재들이 맞다. 또 그만큼 자기 작품 이야기하는 것을 쑥쓰러워하는 부류들이기도 하다.


4. 강세형을 만나러 구치소에 가다

그렇게 끝나버릴 것만 같던 그와의 관계는, 그러나 그해 4월 초순 내가 안양에 있는 한 대학교에서 작가 초청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이어지게 되었다... 택시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던 중 안양 사거리 교차로에서 '군포시'라는 이정표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 다시 택시기사에게 '서울 구치소'로 가 달라고 부탁을 했으며, 그렇게 '서울 구치소' 앞 커다란 가로수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도로에 30분만에 도착하고 나니 그제야 마치 술이 깬 사람처럼 다리가 조금 떨리면서 사태가 제대로 파악되기 시작했다.

(...)

어쩌면 바로 그 때부터 사건은 이미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좋은 것들은 외면했어야 했는데, 결국 나는 그러지 못했고 끝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데 일정 정도 가해자 역할을 하고 만 것이다. 그날이 바로 그 시작이었던 셈이다. 좋은 것들은 아예 외면했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PART.1 끝) 


* PART 1. 감상

: 작가의 경험 혹은 주변인물의 경험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쓴 소설로 보인다. 소설가의 바운더리를 벗어나지 못한 이야기는 결국 소설가 자신의 이야기. 소설가가 소설 쓰는 이야기. 게으른 취재로 인해 오직 소설가의 필력에 의지한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나는 그런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도스'는 집단 자살 혹은 살인사건 현장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는 추리적 구조와 그 사연을 거슬러올라가는 플래시백. 뭔가 죄를 고백하는 듯한 화자의 담담한 서술. 소설가와 독자의 만남치고는 굉장히 특이한 (그래서 이야기가 될 만한) 경우를 제시하며 독자의 흥미를 끄는데 성공하고 있다.

이 소설의 미덕이라면 도무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지를 좀체 예상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어떤 식의 이야기가 펼쳐질지가 궁금하다. 장편소설을 문학잡지에 연재되는 것을 찾아 읽기는 처음이다. 이게 다음호를 기다리는 맛이 있구나.


(2015.1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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