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고래 - 천명관 독서 일기 - 시와 소설

훗날 대극장을 설계한 건축가에 의해 처음 그 존재가 알려져 세상에 흔히 '붉은 별돌의 여왕'으로 소개된 그 여자 벽돌공의 이름은 춘희다. 전쟁이 끝나가던 해 겨울, 그녀는 한 거지 여자에 의해 마구간에서 태어났다. 세상에 나왔을 때 이미 칠 킬로그램에 달했던 그녀의 몸무게는 열네 살이 되기 전에 백 킬로그램을 넘어섰다. 벙어리였던 그녀는 자신만의 세계 안에 고립되어 외롭게 자랐으며 의붓아버지인 문으로부터 벽돌 굽는 모든 방법을 배웠다. 팔백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화재 이후, 그녀는 방화범으로 체포되어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영어(囹圄)의 시간은 참혹했으며 그녀는 오랜 교도소 생활 끝에 벽돌공장으로 돌아왔다. 당시 그녀의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p.9)
: 영어(囹圄) = 감옥.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야. 
그것은 춘희와 같은 감방 안에 있던 한 여죄수의 말이었다. 얼굴이 온통 주근깨로 뒤덮여 있던 그녀는 청산가리가 든 음식을 먹여 자신의 두 딸과 남편을 독살한 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 때문에 감방 동료들은 그녀를 청산가리라고 불렀는데, 그녀는 사형을 당하기 전까지 쉬지 않고 감방 안의 먼지를 쓸고 닦았다. 같은 방에 있던 다른 죄수들이 살날도 얼마 안 남은 사형수가 청소는 해서 뭐 하냐고 비아냥거렸을때, 청산가리는 걸레로 마룻바닥을 훔치며 그렇게 대답했다. 덧붙여, '죽음이란 건 별게 아니라 그저 먼지가 쌓이는 것과 같는 일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춘희는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날 폐허가 된 살림집을 행해 걸으며 불현듯 청선가라의 수수께끼 같은 말이 떠올랐다. (p.11) 

붉은 벽돌로 가득 들어찬 공장 마당의 풍경이 꿈인 듯 생시인 듯 눈앞에 펼쳐졌다. 벽돌 사이를 지그재그로 뛰어다니며 장난하던 어린 시절의 모습도 떠올랐다. 인부들을 닦달하던 양아버지의 고함소리도 들리는 듯 했고 짙은 화장을 한 엄마의 눈웃음치는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다. 언젠가 엄마를 따라 들어간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이 어른거리기도 했다. 총소리와 말발굽 소리, 금발의 여자들이 내지르는 호들갑스런 비명소리가 어지럽게 뒤엉켜 귓가를 맴돌았다. 교도소에 있을 때 자신을 따라다니며 집요하게 괴롭히던 한 교도관의, '바크셔'라고 속삭이는 듯한 소리도 들렸다. 그것은 영국에 있는 한 지방의 이름이며 그곳에 기원을 둔 돼지의 품종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춘희는 끝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후에 그 교도관은 춘희에게 얼굴을 물어 뜯겨 볼의 살이 뭉텅 잘려나간 채 죽을 때까지 알루미늄으로 만든 가면을 쓰고 살아야 했다. 그로 인해 여자로서 춘희가 겪은 고초는 차마 입에 담기 힘들 만큼 끔찍한 것들이었으나 그것은 모두 과거의 일이 되었다. 고통은 희미해지고 그녀는 이제 교도소를 나와 쇠락한 벽돌공장으로 돌아와 있는 것이다. 
환청인 듯 귓가에서 다시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녀는 흰나비를 쫓아 망초 사이를 뛰어다녔다. 풀잎이 맨종아리를 스쳐 쓰라렸지만 그것 역시 꿈인지 생시인지를 분간할 수 없었다. 나비는 어느새 하늘로 날아올라 가물가물 멀어지고 있었다. (p.13) 

오래 전, 춘희의 엄마는 그 솥에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내들을 위해 국수를 삶아내기도 하고, 여름이면 미루나무에 매놓고 키우던 쌀개를 잡아 개장국을 끓여내기도 했다. 개장국을 끓이는 날은 아침부터 공장 전체가 술렁거렸다. 마당 한쪽에 벽돌을 쌓아 솥단지를 걸고 물부터 끊이면 인부들은 일을 하면서도 연신 솥이 걸려 있는 쪽을 힐끔거리며 하루종일 걸근거렸다. 드디어 개장국 냄새가 공장 전체에 퍼져나가고 해가 떨어지면 사내들은 얼굴 가득 수줍은 미소를 띤 채, 솥단지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춘희의 엄마는 사내들에게 야한 농지거리를 던져가며 국을 한 사발씩 퍼주었고, 그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후루룩 소리를 내며 뜨거운 국을 잘도 먹었다. 늘 먹을 게 넘치고 풍요롭던 시졀이었다. (p.17)
: 걸근거리다 = 목구멍에 가래 따위가 걸려 자꾸 간지럽게 거치적거리다.

살들,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던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이자 영원히 벗어던질 수 없는 천형(天刑)의 유니폼처럼 그녀를 안에 가둬놓고 평생 이끌고 다니면 멀고 먼 길을 돌아 마침내 다시 이곳 벽돌공장까지 데리고 온 그 살들을 춘희는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햇볕에 그을리고 군데군데 상처를 입었지만 그녀의 피부는 아직도 탄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춘희는 자위행위를 하듯 부드럽고 은밀하게, 그리고 집요하게 온몸을 구석구석 닦아냈다. 목욕을 하는 동안 문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래 전, 의붓아버지인 문은 이미 몸무게가 백 킬로그램에 가까워지는 그녀를 펌프 옆에 세워놓고 몸을 씻기며 말하곤 했다.
'춘희야, 너의 이 굵은 다리로는 누구보다도 단단하게 진흙을 이길 수 있고 이 두꺼운 팔로는 누구보다도 벽돌을 많이 들어옮길 수 있으니 그게 다 너의 복이란다.' (p.19)
: 천형(天刑) = 천벌

오랫동안 비어 있던 뱃속에 육기(肉氣)가 들어가자 곧 내장이 뒤틀리며 구역질이 치밀었다. 교도소 입구에서 어느 노파에게 두부 한 모를 얻어먹은 이후, 실로 아흐레 만에 처음으로 음식물이 들어갔으니 당연히 그럴 법도 했다. 그녀는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음식물을 억지로 눌러삼켰다. 겨우 속이 가라앉자 찬물로 입을 헹구고 자리에서 일어나 채 마르지 않은 수의를 꿰입었다. 찢어져 너덜거리는 바짓단은 손으로 마저 잘라냈다. 축축한 수의를 입고 그녀는 잠시 망연한 표정으로 공장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살림집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겨놓기 시작했다. 가마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족제비가 그녀를 보고 놀라 풀숲으로 달아났다. 망초 위에서 놀던 된장잠자리도 빠른 날갯짓을 하며 길을 비켜주었다. 
이제 공장에 주인이 돌아온 것이다. (p.21) 
: 육기(肉氣) = 고기로 만든 음식

이 긴 이야기의 시작은 평대에서 국밥집을 하던 한 노파로부터 비롯된다. 그녀는 춘희가 태어나가도 전에 죽었으며 두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어 서로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어찌 알랴. 이 모든 이야기가 한편의 복수극일 수도 있음을. 과연 노파는 자신의 뜻대로 복수에 성공한 걸까? 거기에 대해 답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녀의 저주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며 그녀의 이야기는 까마득한 옛날, 평대에 처음 기차가 들어왔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기차역 근처, 후미진 곳에 있던 국밥집은 외지에서 떠들어온 뜨내기나 막노동꾼을 상대로 국밥과 함께 탁배기를 팔던 곳으로 천하에 보기 드문 박색의 노파 혼자서 근근이 꾸려가고 있었다. 그녀가 생긴건 비록 가량맞아 보여도 평생 남의 집 부엌살이로만 떠돌다보니 그런대로 상차림이 제법 조촐해던지 손님이 심심찮게 드나들었다. 어느 해 겨울, 노파는 장을 보러 나가다 그만 문 앞에 얼어 있는 개숫물 위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노파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얼음판에 대고 '도대체 어느 얼어죽을 놈의 여편네가 남의 집 문 앞에다 개숫물을 버렸느냐'며 투덜대고 일어났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 옛날 평대의 골짜기를 스쳐가던 바람처럼, 가볍게. (p.22) 
: 탁배기 = 막걸리의 경상도 방언
: 박색(薄色) = 아주 못생긴 얼굴 
: 가량맞다 = 조촐하지 못하여 격에 조금 어울리지 아니하다.
: 개숫물 = 음식 그릇을 씻을 때 쓰는 물

이 무렵, 한겨울에 때 아닌 꿀벌이 날아들어 평대의 하늘을 새카맣게 뒤덮었다. 사람들은 뭔가 큰 변괴가 생긴 거라며 두려움에 떠었는데, 뒤이어 한 여자가 마을 어귀에 나타났다. 그런데 그녀는 섬끅하게도 한쪽 눈이 빠져 달아난 애꾸였다. 한 손에 지팡이를 짚고 있는 여자의 얼굴은 잔주름 하나 없이 백옥처럼 깨끗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머리가 하얗게 세어 있었다. 그것은 여자가 어릴 때부터 꿀을 너무 많이 먹었기 때문이었는데, 이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의 나이를 도무지 가늠 할 수 없었다. 
여자는 벌들을 몰고 노파가 누워 있는 국밥집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뒤따라온 마을 사람들에게 그녀는 자신이 노파의 딸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애꾸 여자의 괴이한 풍모가 두렵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녀의 머리 주변을 빙빙 도는 벌에게 쏘일까봐 목을 잔뜩 움츠린 채, 빨리 의원을 데려와야 한다느니, 욕창에는 말린 잇꽃이 좋다느니 어쩌고 하며 조심스럽게 한마디씩 보탰다. 그러나 애꾸는 '내 엄마는 내가 알아서 한다'며 사람들을 모두 집밖으로 쫓아냈다. 사람들이 돌아가고 나자 그녀는 이미 사신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노파의 얼굴을 하나뿐인 눈으로 노려보았다. 훗날, 여자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애꾸로 만든 장본인이 바로 노파라고 했는데, 그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당시 그들 모녀는 헤어진 지 이십여 년이 지나 있었다. (p.24) 
: 변괴 - 이상야릇한 일이나 재변
: 잇꽃 - 홍화. 꽃에서 붉은빛 염료를 얻는다 하여 홍화라고도 한다. 열매는 볶아서 물을 끓여 먹거나 기름을 짜고, 꽃은 노란 물이나 붉은 물을 들이는 데 쓰며, 약으로 쓰기도 한다. 

무릇, 생명 가진 모든 존재의 소이연은 생육과 번식일진데, 아무리 세상에 드문 박색이라곤 하지만 그녀도 엄연히 x자 두개를 갖고 태어난 암컷임에는 틀림없었으니 그 특별한 수컷의 기물을 마주하고 어찌 기함을 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때문에 그녀가 온몸이 떨리고 온갖 야릇한 생각에 아랫도리가 뜨거워지며 잊고 있던 한숨을 크게 내쉰 것 까지는 능히 이해할 만한 일이었으며 자못 측은한 구석까지 있었다. 그러나 뒤이은 그녀의 행0동은 매우 외설적이며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납득하지 못할 대담하고도 엉뚱한 것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의 코앞에서 꺼덕대는 반편이의 양경을 두 손으로 잡아 벌리고 있던 입속으로 그만 덥석 물고 만 것이다. 물론 자신도 모르게 한 느닷없는 행동이었다. 이때 반편이는 뭐가 그리 즐거웠는지 신나게 물탕을 튀기며 히죽거리다 가엾은 노처녀를 내려다보며 한마디 했다. 
- 히히, 그건 먹는 게 아녀, 빙신아. 

훗날, 춘희의 엄마인 금복이 반편이의 얘기를 전해 듣고 이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그 이야기가 사이즈에 대한 세상의 온갖 견해들을 갈음하는 바 있어 여기에 옮겨 적자면 다음과 같다. 
- 글쎄, 크다고 뭐 딱히 좋을 건 없지만, 그래도 이왕지사, 굳이 하나를 선택하려면.....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인 후,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 큰 게 좋겠지. (p. 27) 
: 소이연 - 그리된 까닭
: 생육 - 나아서 기름 
: 기물
(奇物) - 기이한 물건
: 기함 - 1. 기력이 없어서 가라앉음. 
2. 갑작스레 몹시 놀라거나 아프거나 하여 소리를 지르면서 넋을 잃음. 
: 양경 - 음경

다음날 아침 청지기가 문을 열었을 때 가엾은 노처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그녀가 다행히 죽지 않고 몸을 추슬려 어디론가 제 갈 길로 갔다고 생각혀며 각자의 소임으로 돌아갔다. 그것은 아랫것들의 법칙이었다. 이야기는 그렇게 끝나는 가 싶었다. 
그런데 며칠 뒤, 자정도 넘은 야심한 시각에 누군가 조용히 반편이의 방으로 숨어들었다. 바로 며칠 전 피곤죽이 되도록 사매질을 당한 노처녀였다. 그녀는 세상 모르게 곯아떨어진 반편이를 조용히 흔들어 깨웠다. 반편이가 눈을 뜨자 노처녀는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 아가야 나랑 같이 목간하러 가지 않으련?
- 나, 목간하기 싫다. 
반편이가 다시 졸린 눈을 감으려 하자 그녀는 반편이의 바지춤에 손을 넣고 양물을 살살 주물렀다. 
- 이래도 싫어?
그러자 반편이가 입을 해 벌리며 대답했다. 
- 히히, 그럼 나, 목간하고 싶다. 
그녀는 반편이를 데리고 조용히 대문을 나섰다. 반편이는 목간을 부엌에서 안 하고 어디를 가느냐고 투덜댔지만 살살 어르고 달래어 집 밖으로 끌고 나왔다. 잠시 후, 그녀가 반편이를 데리고 간 곳은 바로 마을 앞을 흐르는 큰 개울가 였다. 반편이는 두려움을 불러 일으키는 음산한 물소리와 그녀의 심상치 않은 눈빛에 겁을 먹고 뒤고 물러섰다. 
- 춥다, 나 집에 가고 싶다. 
그러자 노처녀는 재빨리 반편이의 옷을 모두 벗겼다. 그리고 그를 개울가 풀숲에 눕히고 그 위에 올라탔다. 
- 가만히 있어. 아가야. 그래야 착하지.
노처녀는 반편이의 양물을 잡아 자신의 음문에 끼워맞추고 허리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반편이도 늘 해오던 대로 입을 벌린 채 헤죽거리며 엉덩이로 장단을 맞췄다. 사방은 불빛 하나 없이 캄캄했으며 거친 물소리와 두 사람의 살 부딪치는 소리만이 요란했다. (p.31) 
: 청지기 - 양반집에서 잡일을 맡아보거나 시중을 들던 사람
: 반편이 - 지능이 보통 사람보다 모자라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 사매질 - 권력이 있는 자가 사사로이 사람을 때리는 짓



(작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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