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그가 모르는 장소 - 신경숙 독서 일기 - 시와 소설

뿌리채 뽑힌 국화꽃이 물 위로 떠내려가기라도 하는가. 물 냄새 속에 국화 냄새가 섞이었다. 서리 맞은 국화에서나 맡아지는 향이다. 꽃 냄새네, 어머니가 중얼거렸다. 마당에도 국화가 다 피었는데... 오래가는 꽃이다... 서리 맞고 눈 맞을 때까지도 피어 있지야. 어머니가 중얼거리다가 추운지 오소소 몸을 움츠렸다. 그는 곁의 방한복을 집어 어머니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어머니는 아직은 괜찮다, 하면서도 그가 걸쳐준 방한복을 꼭꼭 여미었다. 지금은 괜찮아, 아직은 괜찮다. 문득 그는 어머니가 가장 많이 쓰는 말이 그 두 마디라는 걸 깨닫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주변 사람들이 안부를 물어오면 아직은 괜찮아요, 그랬고, 어깨가 시린 일로 인해 잠을 못 이루며 찬물과 더운물로 번갈아가며 찜질을 하면서도 병원에 가보자고 하면 지금은 괜찮아, 그랬다. 그는 아까 딸애의 얼굴을 떠올렸을 때처럼 두 손바닥으로 다시 얼굴을 감싸고 벅벅 문질렀다. 손바닥에서 어분 냄새가 맡아졌다. 생각해보니 지금은 괜찮아, 아직은 괜찮다...라는 어머니의 말은 지난 일 년 동안 그가 가장 많이 내뱉은 말이기도 했다. 지난 일 년 동안 어디선 혼자 남게 되면 혼자가 된 그 틈으로 어김없이 아내 생각이 밀려들었다. 서류를 정리하다가도 택시를 잡다가도 그는 불쑥불쑥 혼자말을 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파트의 베란다에서, 운전하고 가다가 격한 마음에 휩쓸려 가로수 밑에 차를 세우고서 그는 중얼거렸다. 지금은 괜찮아, 아직은 괜찮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랑과 신뢰, 거기서 일구어지는 삶의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얼마나 큰 불행들이 숨어 있고 엄청난 비극이 문득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인가의 환기이며, 그러기 때문에 존재의 비극적 실상을 인식하면서 그 상처들을 보듬고 싸안고 기대는 데서 그 슬픔을 함께하는 연민의 정서야 말로 슬픔 아름다움 이라는 것이다.'(김병익, '존재의 괴리, 그 슬픔 아름다움'中)

생각해보면 가끔, 아니 자주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저 사람은 어떤 슬픈 사연을 숨기고 있을까', 산다는 것이 기쁨보다는 슬픔을 느낄 일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된 어느날 부터였을 것이다. 함께 웃고 떠느는 그 시간들 뒤에,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혼자 울고 있을까. 신경숙의 소설은 그 시간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근래 읽은 '지금 우리 곁에 누가 있는 걸까요'도, '딸기밭'도, '그가 모르는 장소'도 그렇다. 평론가 김병익의 말대로 상처를 보듬고 싸안는 연민의 정서가 너무도 아름다운 소설이다. 말줄임표가 참 많은.. 아니 그럴 수 밖에 없는 그녀의 소설들이 참 슬프고 아름답다. 

(20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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