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악마 있다 다만 숨어있을 뿐 - 한겨레 160316 신문 스크랩



미하일 불가코프(1891~1940)는 1924년 문단에 데뷔했다. 스탈린 시대 반혁명 회오리에 휩싸여 공개적 침묵을 강요당했다. 1929년부터 발표되리란 기대도 없이, 간경화와 실명 속에, 밀실의 작업에 전념했다. 아내를 통한 구술로 1940년 2월 작업을 마치고 3월10일에 죽었다. 유고는 미발표 상태로 27년이 지난 1967년에야 출간된다. <거장과 마르가리타>(Масер и Маргарита)라는 환상소설이다.

스탈린이 통치하던 1930년대 모스크바에 악마 볼란트와 그의 시종들이 출현한다. 볼란트의 흑마술에 모스크바는 일대 혼란에 빠진다. 위조된 공문서들, 우스꽝스러운 해프닝들, 실종된 사람들, 의문의 죽음들. 불가코프가 폭로한 세계는 관료주의의 형식과 이념이 지배하는 소비에트 러시아의 이면이다. 아무도 깨닫지 못하는 일상의 이면에는 악마가 숨어 있었다. 악마가 직접 출현하기 전까지, 권력에 줄 대며 특권을 누려온 사람들, 사회적 지위와 명성과 재산, 모스크바 대극장의 흥행 같은 기만은 악마의 장난에 불과했다. 무명의 거장만이 악마를 포착한다. 그러나 신을 부정하기에 악마의 존재도 부정하는 국시에 따라 정신병원에 감금된다.

최근 경동택배 신입사원으로 입사 한 달 만에 숨진 주선우(27)씨 아버지를 인터뷰하러 갔다. 김포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한 수사보고서를 봤다. 제어 불능의 지게차에서 탈출하다 사망한 정황이 담긴 영상을 경찰도 보았다. 그런데 여전히 회사 쪽 주장대로 사이드를 채우지 않고 내려 발생한 본인 과실로 보고돼 있다. 더 큰 난해함은 목격자들의 진술이다. 한 직원은 고인이 엉뚱한 곳을 바라보고 있는데 지게차가 저절로 굴러와 덮치는 모습을 봤다고 진술한다. 이 목격의 ‘신비’를 모를 경찰은 없다. 그러나 더 큰 기적은 이런 거다. 이 청년은 애초 김포수하물집하장에서 죽을 신분이 아니었다. 그는 경동택배 사무실에 있어야 했다. 사망 후 급히 합진운송하역 지게차 운전사로 변조된 사연이다. 애초 죽어선 안 될 사람이 죽었고, 죽었기 때문에 새로운 소속이 생겼고, 새로운 신분이 완성됨으로써 비로소 죽을 수 있게 되었고, 죽었기 때문에 죽음은 다시 조작됐고, 조작됐기 때문에 목격자까지 생겼다. 

논란 끝에 테러방지법이 통과됐다. 야당 대표 비서관의 핸드폰까지 사찰된 증거가 폭로됐지만, 결과는 모른다. 환상은 현실 표현이 가로막혔거나 불가능할 때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가령 대한민국의 일상이라는 악마의 장난 이면엔 세월호 참사 같은 초현실이 벌어진다. 세월호가 ‘언터처블한 우상’이 되고 있다는 기독교계의 지성이나 그가 강조하는 ‘쓰레기 안 버리기’ 같은 도덕 캠페인으로 가능할까? 전에는 판타지를 싫어했다. <요한계시록>을 이해하지 못했다. 칼빈이 그랬던 것처럼 <계시록>강의를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판타지를 이해했고 환상이 뭔지 알 것 같다. 미루어 뒀던 <계시록>설교를 해야 할까? 악마를 깨우치지 못하면 신도 없다.

천정근(목사·안양 자유인교회)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