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경준]네팔 사람들이 가난한 진짜 이유 - 동아 160315 신문 스크랩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20&aid=0002955122
대학생이 된 아들의 책장에서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과 로버트 프랭크 미 코넬대 존슨경영대학원 교수가 공저한 ‘경제학(Principlesof Economics)’을 꺼내 훑어보다 이런 대목에 눈길이 머물렀다.

‘네팔 시골에서 평화봉사단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한 젊은 경제적 사유인(思惟人)은 히말라야 출신 버카만을 요리사로 고용했다. 그는 다른 재주도 많았다. 지붕을 엮거나, 염소를 잡거나, 신발 수선도 잘했다. 숙련된 양철공이자 목수이기도 했으며, 바느질도 잘하고, 고장 난 알람시계도 잘 고치며, 페인트칠도 잘했다. 민간요법에도 능통했다.

미국 사람들이라면 다른 사람을 고용해 시켰을 다양한 일을 네팔에서는 숙련되지 못한 사람들도 잘 수행한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어떤 이는 네팔 사람들이 너무 가난해 다른 사람을 고용할 만한 돈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반대다. 가난하기 때문에 모든 일을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을 스스로 하기 때문에 가난한 것이다.’

소싯적 네팔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했던 프랭크 교수가 쓴 것으로 보이는 이 글은 ‘비교우위’를 설명하는 장(章)의 마중물이었다. 비교우위란 쉽게 말해 내가 잘한다고 자급자족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더 잘하는’ 분야에 집중해 다른 쪽에 특화한 타인과 거래하는 게 낫다는 경제학의 기초이론이다.

음식을 만들면서 짬짬이 못질도 하고, 벽도 바르는 버카만을 머릿속에 그려보다 내 몫 챙기기에 급급해 협상할 줄 모르는 우리 지방자치단체들을 떠올렸다.

상징적인 것이 2004년 불거진 ‘7m 도로 분쟁’이다. 경기 용인 죽전지구 입주가 한창일 때 서울로 이어지는 교통의 체증을 덜기 위해 죽전∼분당 도로 중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의 7m 미개통 구간을 연결하려다 일어난 일이다. 성남시와 분당 주민들은 도로가 생기면 소음, 공해, 교통대란에 시달린다며 결사반대했고, 고소·고발, 공사중지 가처분신청이 이어졌다. 시행사 측이 경찰과 ‘용역회사 직원’을 등에 업고 공사를 강행해 수십 명이 부상을 입고, 초등학생들이 도로를 점거하는 어이없는 장면도 연출됐다.

정찬민 용인시장은 작년 8월 주민 500여 명과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이웃 평택시청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용인과 평택 사이 진위천에 설치된 송탄취수장을 폐쇄하라는 주장이었다. 용인시는 1979년 조성된 송탄취수장 때문에 시 전체 면적의 10%가량이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이고 말았다. 정 시장은 “광역상수도망이 확충돼 송탄취수장이 필요 없게 됐으니 제한을 풀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송탄취수장은 비상 급수원”이라고 맞선 공재광 평택시장은 이날 시위대를 외면하고 지역행사를 챙겼다.

드물긴 하지만 주고받기를 통해 ‘윈윈’을 꾀하는 지자체도 있다. 7일 강원 춘천시 KT&G 상상마당에서 열린 ‘경기-강원 상생협력사업 토론회’. 남경필 경기지사와 최문순 강원지사, 그리고 여주 포천 가평 양평 연천(이상 경기), 춘천 원주 철원 횡성(강원)의 시장, 군수가 소속 정당을 초월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5개 그룹으로 나눠 11개 안건을 토론한 끝에 9개 항의 공동합의문을 도출했다. 여주시와 횡성군이 내년 완공 예정인 원주 광역화장장을 이용하는 대신 사업비 일부를 분담하는 식이다. 원주시는 원주기독병원의 응급의료 전용 ‘닥터헬기’를 여주시민들에게도 지원해 달라는 즉석 요청을 흔쾌히 수락하기도 했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는 분명하다. 네팔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지만 행복지수는 최상위권이다. ‘가난해지는 길’을 택한 지자체들은 행복하기라도 한가 묻고 싶다.

정경준 사회부장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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