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인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책을 사주마고 약속했지. 남편도 자기에게도 오랜만에 책 한 권쯤 사달랬던가.
나는 좀 마음이 밝아져서 책방에 들어선다. 한 질로 된 위인전이 눈에 띈다. 소크라테스, 링컨, 에디슨, 슈바이처, 퀴리 부인, 이순신, 김유신, 이율곡...... 소년들의 꿈의 인물들. 나는 그것을 흥정하려다 말고 그들의 책들이 와락 싫어진다. 마음이 좀 더 어두워진다.
역경과 가난을 이기고 입신양명한 이야기들. 그건 적어도 스승과 제자. 스승과 제자의 어미 사이에 대화가 있었던 때의 이야기인 것이다. 스승과 제자,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렇게도 질기고 추한 허세와 허위가 성새처럼 가로막고 있던 때의 이야기는 결코 아닌 것이다.
나는 내 아들을 돕지는 못할망정 기만한 수는 없다. 돌아나오려다 말고 남편에게 줄 만한 것을 사볼까 하고 선물 용으로 된 아름다운 단행본 쪽으로 갔다.
수필집 소설 시집, 장정뿐 아니라 제목도 빼어나게 아름답다. 이렇게 아름다운 말들이 모두 우리말이라니. 그러나 지나치게 아름다워 꼭 밍크 목도리 같다. 그 자신 생명도 없으면서, 죽었으면서, 요염하고 오만한 밍크의 허위. 이 책들은 남편에게 좀더 쓸쓸하고 좀더 미운 웃음을 웃게 할 것이다.
나는 사지 않는다.
어느틈에 거리에는 눈이 오고 있었다.
나는 문득 작고한 어느 시인의 시가 생각나면서 가래침이 뱉고 싶어졌다.
"카악"
목구멍을 크게 울렸으나 가래침은 나오지 낳고 가래침은 그냥 고여 있고 가래침이 고여 있는 자리는 답답하고 아팠다.
- '세모' 박완서 소설전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中, 박완서 선생이 발표한 첫번째 단편소설
나는 좀 마음이 밝아져서 책방에 들어선다. 한 질로 된 위인전이 눈에 띈다. 소크라테스, 링컨, 에디슨, 슈바이처, 퀴리 부인, 이순신, 김유신, 이율곡...... 소년들의 꿈의 인물들. 나는 그것을 흥정하려다 말고 그들의 책들이 와락 싫어진다. 마음이 좀 더 어두워진다.
역경과 가난을 이기고 입신양명한 이야기들. 그건 적어도 스승과 제자. 스승과 제자의 어미 사이에 대화가 있었던 때의 이야기인 것이다. 스승과 제자,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렇게도 질기고 추한 허세와 허위가 성새처럼 가로막고 있던 때의 이야기는 결코 아닌 것이다.
나는 내 아들을 돕지는 못할망정 기만한 수는 없다. 돌아나오려다 말고 남편에게 줄 만한 것을 사볼까 하고 선물 용으로 된 아름다운 단행본 쪽으로 갔다.
수필집 소설 시집, 장정뿐 아니라 제목도 빼어나게 아름답다. 이렇게 아름다운 말들이 모두 우리말이라니. 그러나 지나치게 아름다워 꼭 밍크 목도리 같다. 그 자신 생명도 없으면서, 죽었으면서, 요염하고 오만한 밍크의 허위. 이 책들은 남편에게 좀더 쓸쓸하고 좀더 미운 웃음을 웃게 할 것이다.
나는 사지 않는다.
어느틈에 거리에는 눈이 오고 있었다.
나는 문득 작고한 어느 시인의 시가 생각나면서 가래침이 뱉고 싶어졌다.
"카악"
목구멍을 크게 울렸으나 가래침은 나오지 낳고 가래침은 그냥 고여 있고 가래침이 고여 있는 자리는 답답하고 아팠다.
- '세모' 박완서 소설전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中, 박완서 선생이 발표한 첫번째 단편소설
어둠 속에 잊혀져 가던 어떤 한 시절이 다시 밝아진다. 시절은 가고 그 시절의 어둠은 아직 우리 곁에 스며있다.
(2016.04)
태그 : 박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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