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카메라와 워커 - 박완서 독서 일기 - 시와 소설

"훈아, 너희 담임선생님이 그러시는데 너는 인문계보다는 이공계가 더 적성에 맞는대. 좀 좋아. 공대 같은데 가면 요새 공장이 많이 생겨서 제일 잘 팔린다더라. 넌 큰 기업체에 취직해서 착실하게 일해서 돈도 모으고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해서 살림 재미도 보고 재산도 늘리고, 그러고 살아야 돼. 문과 가서 뭐하겠니? 그야 상대나 법대로도 풀릴 수 있지만 그게 그리 쉬우냐. 까딱하단 문학이나 철학이나 하기가 꼭 알맞지. 아서라 아서. 사람이 어떡하면 편하고 재미나게 사느냐를 생각하지 않고, 사람은 왜 사나, 뭐 이런 게지. 돈을 어떻허면 많이 벌 수 있나는 생각보다 돈은 왜 버나 뭐 이런 생각 말이야. 그리고 오늘 고깃국을 먹었으면 내일은 갈비찜을 먹을 궁리를 하는 게 순선데, 내 이웃은 우거짓국도 목 먹었는데 나만 고깃국을 먹은 게 아닌가 하고 이미 뱃속에 들은 고깃국조차 의심하는 바보짓 말이다. 이렇게 자꾸 생각이 빗나가기 시작하면 영 사람 버리고 마는거야. 어떡허든 너는 이 사회에 순응해서 이득을 보는 사람이 돼야지. 괜히 사회의 병폐란 병폐는 도맡아 허풍을 떨면서 앓는 소리를 내는 사람이 될 건 없잖아."
"고모,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었나요?"
훈이가 내 말의 중턱을 자르며 푸듯이 말했다. 나는 당황했다. 훈이가 아버지에 대해 뭘 물어본 게 이번이 처음이라 그렇기도 했지만, 내가 오빠에 대해 오랫동안 몰래 추측하고 있던 걸 훈이한테 느닷없이 들키고 만 것 같아 더 그랬다.

(...)

"그까짓 농땡이 칠 거 없다. 같이 가자 서울로. 몸이나 성할 때 일찌거니 집어치는 게 낫겠다"
"그건 싫어"
"왜 싫어?"
훈이의 싫다는 대답을 나는 전연 예기치 못했으므로 당황할 밖에 없었다.
"나는 더 비참해지고 싶어. 그래서 고모나 할머니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기술이나 정직이니 근면이니 하는 것이 결국엔 어떤 보상이 되어 돌아오나를 똑똑히 확인하고 싶어. 그리고 그걸 고모나 할머니에게 보여주고 싶어."
"그걸 우리에게 보여서 어쩌겠다는 거야? 그걸로 우리에게 복수라고 하겠다 이 말이냐?"
나는 훈이 말에 무서움증 같은 걸 느꼈기 때문에 흥분해서 악을 쓰고 덤벼들었다.
"고모 그렇게 흥분하지 말아. 나는 다만 고모가 꾸미고. 고모가 애써 된 이 일의 파국을 통해서 고모와 할머니로부터, 그리고 이 나라로부터 순조롭게 놓여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을 분이야. 그렇지만 고모, 오해는 마. 내가 파국을 재촉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마. 나는 내 나름대로 이곳에서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어. 그러노라면 누가 알아, 일이 고모의 당초 계획대로 잘 풀릴지. 나도 어느 만큼은 그쪽도 원하고 있어. 파국만을 원하고 있는 게 아냐"
"그래. 참 잘될 수도 있을 거야. 잘될 여지는 아직도 충분히 있고 말고."
나는 별안간 잘될 가능성에 강한 집착을 느끼며 태도를 표변했다.
"그렇지만 고모. 잘되게 하려고 너무 급하게 굴진 마. 와이로 쓰고 빌붙고 하느라 돈 없애고 자존심 상하고 하진 말란 말야. 여기 와보니 육 개월 기다리라는 임시직 신세로 삼사 년을 현장으로만 굴러다니는 친구가 수두룩해. 임시직에겐 봉급 조금 주고, 일요일도 없이 부려먹고, 책임은 없고, 얼마나 좋아. 회사측으로선 훌륭한 경영 합리화지"
훈이는 버스정류장까지 나를 배웅했다. 진부까지 나가는 완행 버스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훈이에게 이야기해야 될 것 같은 심한 압박감을 느꼈다. 나는 내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길이 나빠 얼마나 고생을 하고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나를 과장해서 들려주면서 고속도로가 뚤리면 서울서 강릉까지가 얼마나 가까워지고 편안해지겠느냐, 너는 이런 국토건설사업에 아버지하고 있는 걸 자랑으로 삼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 박완서, '카메라와 워커'中

시대를 폐부를 날카롭게 꿰 뚫는 작가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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